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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 ‘발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국제농업개발협력센터장
허 장
 
‘Develop’은 ‘개발하다’일까, ‘발전하다’일까. 대학 때 시험문제에 나온 적도 있었다. 1970년대 빠른 경제성장, 1980년대 부동산 개발, 오늘날의 해외 자원 개발 등은 타동사로서의 ‘개발’일 것이고, 개인이나 집단의 어떤 특징이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한다는 그런 의미로는 자동사로서의 ‘발전’에 가까울 것이다. 개발에 대한 시선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1인당 GNP 증가로 대변되는 경제성장과 개발이 우리 사회에서 소득 격차와 불평등의 심화, 환경 자원 고갈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받고도 있다.

지구상의 모든 사회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하나의 발전경로를 따라 이행한다고 하는 50년 전의 근대화론은 학문적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선진국(advanced country), 후진국(backward country)이라고 하는 용어 속에서 근대화론적 사고방식의 잔재가 남아 있다. 나아가, “이제는 선진국이 된 우리의 개발경험을 후진국에게 ‘모델’로 ‘전수(transfer)’해 주어야 한다.”는 국수주의적 개발협력 이념도 알게 모르게 널리 퍼져 있다. 우리의 ‘개발’ 경험보다는 그것으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개도국 및 사업대상 지역의 ‘발전’ 방향과 방안을 모색하여야 하지 않을까.

공적개발원조(ODA)를 포함하여 개도국에 대한 국제사회로부터의 사회, 경제, 제도적 무상, 차관 등 지원을 ‘국제개발협력(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이라고 한다. 그 말이 ‘협력’이라고 하는 상호성을 내포하고는 있으나 자금, 기술 등 유무형의 자원이 개도국 쪽으로 공짜로, 혹은 개도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흘러가므로 사실상 시혜적 의미에서의 ‘원조’다. 여기서도 우리는 ‘발전협력’이 아니라 ‘개발협력’으로 번역해 쓰고 있다. 우리나라 방식의 과거 경제사회 개발이 이들 수원국들에게도 필요하다고 하는 근대화론적 시각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 과정에서 농업이 시장경제에 편입되고 채소, 과일 등 농작물이 환금작물로 상품화되면서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우리 농촌사회의 사회, 경제적 안정성은 빠르게 무너졌다.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있는 나머지 공간’으로 치부되어 온 적도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급격한 변화에 따른 문제점에 국가 차원에서 많은 방안과 대책들이 제시, 시행되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발전’을 무시한 ‘개발’이 초래한 상처를 치유하여야 한다는 목적 아래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개발보다는 발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개도국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라고 하는 타동사로서의 개발이 아니라, 개도국이 스스로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간다.’라고 하는 자동사로서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개도국을 위하여 시행하는 국제협력 사업들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발전’보다는 ‘개발’을 위한 협력사업은 아닐까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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