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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 현지 조사와 연구를 위한
역량을 갖추어야 할 때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김 태 윤 교수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고,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를 통하여 선진 공여국으로서 개도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발전에 국제사회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제는 이를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개도국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ODA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역량강화를 위해서는 우선 국제사회가 어떠한 방식으로 개도국에 대한 원조 프로그램을 추진해 왔고, 이를 어떻게 평가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개선해 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국제사회와의 적극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정된 예산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다양한 개발협력 프로그램과 함께 한다면 개도국의 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우리의 역량도 높이게 된다. 나아가 한국의 발전 경험에서 축적된 보다 효과적인 협력방안을 찾고 이를 국제사회의 개발 의제(agenda)로 발굴한다면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는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를 위한 출발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원조가 개도국의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었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원조는 개도국이 당면한 “빈곤의 함정(Poverty Trap)”을 탈피할 수 있도록 개발 수요(big push)를 창출함으로써 개도국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점이다(Sachs, 2006). 특히 원조를 받는 개도국이 좋은 정책을 가지고 있다면 보다 성장하게 됨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기도 하였다(Burnside and Dollar, 2000). 이러한 연구 결과는 새천년개발목표(MDGs)와 연계되어 2000년 이후 개도국에 대한 원조 규모를 증가시키고 그들의 정책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반면 대규모 원조의 경우 개도국의 중앙정부가 계획을 수립하지만, 실제 이를 집행하는 하부 경제주체와의 정보 차이로 인하여 원조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개도국의 거버넌스와 부패 등 사회적 구조로 인하여 중앙정부와 사업주체와의 정보 차이를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unsolvable information), 나아가 대규모 원조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해당 부문의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가 왜곡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음을 지적하기도 한다(Easterly, 2006).

한편 아프리카, 중남미 및 아시아 등에 대한 대규모 원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개도국이 빈곤상태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2000년 중반 이후 국제사회는 거시적 차원의 경제성장에 목표를 두기 보다는 개별 원조 프로그램의 목표와 실행간 인과관계에 기반을 둔 효과성 파악에 보다 주력하게 되었다. 미국 MIT의 빈곤연구소(J-PAL)는 실험적 방식(Randomized Control Trial)으로 개별 원조프로그램과 목표간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정책과 연계시킴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협력방안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힘입어 세계은행과 세계식량기구 등 국제기구에서도 원조 프로그램별 성과지표에 따라 지도하고, 제3자로 하여금 사전·중간·사후 설문조사 등에 기반한 목표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객관적으로 검증토록 하며, 결과를 상호 공유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협력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한편 빈곤층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윤리적 문제와 비용 문제 등 조사 방식의 한계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면서도 사전에 그 효과를 파악할 수 있는 지역경제파급효과(Local Economy-Wide Impact Evaluation)를 활용하기도 한다.

농업부문을 중심으로 실험적 방식을 통한 몇 가지 실증적 연구결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말리(Mali) 남부에서 쌀을 생산하는 농민의 경우 비료를 무료로 지원받을 경우 쌀의 생산성을 약 20~30% 높일 수 있지만, 무료로 지원받은 만큼 다른 투입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수익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Beaman et al., 2013). 비료 사용이 극히 적었던 케냐(Kenya) 농민의 경우 현금이 있는 수확기철에 비료를 미리 구매하고 필요한 시기에 무료로 배송 받는다면 정부의 비료 보조(subsidy)보다도 더 효과적이다(Duflo et al., 2011). 중남미 페루(Peru) 농가의 경우 은행 신용대출이 가능할 경우 그렇지 않은 농가보다 농업생산성이 약 26% 증가하였다(Catherine and Boucher, 2008). 개도국 농가들이 가뭄, 홍수 등 기후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면 수익성 있는 작물을 재배하거나 비료 사용 등 투자를 늘리지만, 적정 수준의 보험료를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J-PAL). 인도의 경우 기후위험에 대비한 종자(예: 홍수저항성 벼)로 인하여 농민들의 농업 생산성이 높아졌으며, 이는 기후위험에 대비한 보험보다도 보다 효과적인 방안이다(Dar et al., 2015).

우리나라도 개도국 농업부문 발전을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원조 프로그램을 수행해 왔으며 보다 효과적인 협력방안을 찾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RPC 건설, 관개시설 지원, 수확후관리기술, 농산물 가치사슬 지원, 통합적인 농촌개발, 농업기술협력, 농업정책 컨설팅, 개도국 학생 및 전문가 초청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도국의 농업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나라의 농업부문 발전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필요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에 개도국과 협업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농업협력 부문에서의 성과를 국제사회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갖추고, 상호 협력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부족함을 개선하며, 나아가 개도국 발전에 보다 효과적인 원조 프로그램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추진하고 공유해왔던 여러 협력 방식들을 이해하고, 우리의 농업부문 개발협력의 방식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개도국에 대한 이해와 함께 현지 조사와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춤으로써 이러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연구소도 이러한 사회적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문헌

Beaman, L, D. Karlan, B. Thuysbaert, and C. Udry. 2013. “Profitability of Fertilizer: Experimental Evidence from Female Rice Farmers in Mali”. American Economic Review: papers & Proceedings 2013. 103(3): 381-386.
Burnside, C. and D. Dollar. 2000. “Aid, Policies and Growth”.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90(4): 847-868.
Catherine G. and S.R. Boucher. 2008 “Credit Constraint and Productivity in Peruvian Agriculture”. Agricultural Economics 39(3): 295-308.
Dar, Manzoor, Kyle Emerick, Alain de Janvry, Elisabeth Sadoulet. 2015. "Technological Innovations, Downside Risk, and the Modernization of Agriculture." J-PAL Working Paper, October 2015.
Duflo, E. M. Kremer and J. Robinson. 2011. “Nudging Farmers to Use Fertilizer: Evidence from Kenya”. American Economic Review 101(6): 2350-2390.
Easterly, W. 2006. The Big Push Déjà Vu: A Review of Jeffrey Sachs's "The End of Poverty: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Time".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44(1): 96-105.
Sachs, J. 2005. The End of Poverty: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Time. Penguin Group.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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