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국농협의 발전과정과 개도국에의 시사점

농협미래경영연구소
최희원 팀장
한국농협의 발전과정
한국농협은 광복이후 경제사업 위주의 舊농협과 농협은행의 이원적 조직체계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舊농협과 농업은행 간에 유기적인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자 농협 본래의 역할을 효과적 수행하기 위하여 1961년 종합농협으로 통합하여 재출범하게 되었다. 한국농협은 종합농협 체제를 바탕으로 사업과 조직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하여 왔는데 각 시기별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961년 3단계 조직(이동조합- 시군조합- 중앙회)으로 출범한 농협은 1960년대 식량증산과 주곡자급 달성에 기여하였다. 정부는 식량증산을 농정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였는데, 농협은 주곡자급 달성을 위한 비료, 농약 등 영농자재의 안정적인 공급 사업(정부정책사업)을 수행하였으며, 농가에 대한 병충해 방제, 농기계사용법 교육, 농산물 품평회 개최 등 다양한 지도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70년대 주곡자급을 달성하게 되었고, 주곡자급 달성은 국가경제발전의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1970년대 농협은 1만 6천여 개 이던 영세한 규모의 이동(里洞)조합을 1972년 약 1,560여 개의 규모화된 단위조합으로 합병하여 조합사업 기반을 강화하였다. 1970년대 농협은 당시 농촌에 만연해 있던 농촌 고리채를 해소하기 위해 상호금융 사업을 도입하여 1971년 연 54%이던 농촌사채금리를 1990년 21%까지 끌어내리는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농어촌 1조원 저축운동’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었으며, 생활물자사업(연쇄점 사업)을 전개하여 농촌지역에 양질의 생필품을 값싼 가격으로 공급함으로써 농촌물가 안정과 농가의 안정적인 소비생활을 가능하게 하였다. 농협은 새마을 운동의 주역으로서 새마을 지도자 양성을 위한‘독농가연수원(새마을지도자연수원 전신)’을 운영하였고, 농협사업과 새마을 운동의 연계를 위한 ‘협동새마을 육성사업’, 소득작목 개발 및 생산시설·유통시설 개선 등을 통한 ‘새마을소득종합개발사업’과‘마을단위 환경개선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80년대에는 기존의 3단계 조직을 2단계 조직(단위조합-중앙회)로 개편하여 단위조합이 농협의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 중심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중앙회장은 조합장이, 조합장은 조합원이 선출하는 직선제를 도입하여 민주농협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 시기 농협은 농촌인구 감소에 대응한 농업기계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농업생산성 향상에 기여하였는데, 대표적인 사업으로 농업인에 대한 농기계구입자금 융자 확대, 농기계 공동이용 사업, 유류사업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농업인과 상인 간 개별거래에서 오기 쉬운 불이익을 방지하고 농업인에게 보다 유리한 판매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주산지별 경매식 집하장 설치를 확대하였다. 1990년대 농산물 시장 개방기에 유통체계 혁신을 꾀하여 농산물 유통단계를 5~6단계에서 2~3단계로 대폭 줄임으로써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켰다. 농협 운영측면에서 중앙회장 자격을 조합원으로 제한하였고, 중앙회 이사 중 조합장 비율을 1/2에서 2/3로 확대하여 농업인 본위의 운영체제를 강화하였으며, 중앙회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엄격히 분리 운용하는 독립사업부제를 도입 운영하였다. 2000년 7월 농협법 개정으로 농협중앙회, 축협중앙회, 인삼협중앙회가 통합한 통합농협으로 출범하였다. 이 시기 조합사업 구조개선 사업 추진으로 조합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도농교류 확대와 농촌 활력화를 위한 ‘농촌사랑운동’, ‘식사랑농사랑 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고, 고품질 안전 농축산물 생산·유통 지원을 위해 농축산물 품질보증제, 친환경 농축산물 브랜드 개발, 식품안전성 강화 등을 적극 추진하였다. 2012년 사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1중앙회- 2지주 회사(경제지주, 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하여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확립을 꾀하고 있다.

한국농협 발전과정의 특징
한국농협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첫째, 하향식(top-down)으로 조직되어 상향식(bottom-up)으로 발전하여 왔다. 농협 설립 당시인 1960년대 초의 우리나라는 농협의 구성원인 농업인들이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식할 만큼 주체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당시 농촌은 극도로 피폐되고 만성적인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촌경제를 하루라도 빨리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주도 아래 협동조합 조직을 단기간에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농협은 농협법이 먼저 제정된 후, 이에 의해 중앙회가 만들어지고 이동조합이 조직되어 중앙회를 정점으로 하는 하향식 조직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농협은 비교적 빠른 기간에 사업체계를 갖출 수 있었으며, 법률에 의해 설립된 조합이 아니면 농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농협이 농촌지역의 핵심적인 농업생산자 단체로서의 조직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둘째, 한국농협은 지도·경제·신용·공제 등 농업생산과 농촌생활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 복합사업 기능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금조성 기능, 특히 도시영업이 허용된 상업은행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한국농협이 종합농협 체제를 택하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농가의 영농 규모가 1ha 미만의 소농체제여서 가계와 영농이 분리되어 있지 못하고, 영농자체도 전문화가 이루어지지 못해 영농과 생활의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합농협의 장점은 농업인이 조합에 와서 필요한 용무를 한 번에 모두 마칠 수 있다는 점, 조합이 종합적인 측면에서 농가경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금지원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거기에 다시 지도사업이 결부됨으로써 각 사업이 상승적으로 신장될 수 있었던 점, 경제사업이 적자가 나더라도 신용사업의 수익으로 이를 메울 수 있어 경제사업의 과감한 추진이 가능했던 점, 막대한 지도사업비를 내부에서 조달할 수 있었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중앙회-회원조합의 2단계 조직으로 기능적 효율화를 지향하였다. 농협은 l961년 종합농협 발족 이후 l980년까지는 단위조합-시군조합-중앙회의 3단계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농협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단위조합의 읍면단위 합병, 상호금융 등 신규사업의 도입, 대농민 업무의 단위조합 이관 등으로 단위조합의 경영기반이 구축되었다. 이와 함께 농촌지역에도 농협과 경쟁이 되는 각종 사업체가 다수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교통·통신수단의 발달로 도시와 농촌간의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크게 단축되었다. 이에 따라 농협은 계통조직간의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1980년 말을 기하여 종전의 3단계 조직을 단위조합-중앙회의 2단계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이같은 조직 개편으로 계통사업 추진과정에서 중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단위조합 운영의 자율성도 제고되었다. 유럽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지역연합회가 단위조합 또는 전국연합회와 통합된 것과 일본에서 1990년대 말부터 현연합회들이 전국연합회 또는 단위조합과 통합된 점에 비추어 보면 한국농협의 2단계 조직으로의 효율화는 매우 빠른 편이었다.
넷째, 정부 정책사업을 대행하여 왔다. 정책사업은 농협의 입장에서 보면 물량의 조달과 공급이 정부책임 하에 이루어지므로 사업이 안정적이며, 농협은 대행 수수료를 받고 그 수익을 조합원에게 환원해 줄 수 있다. 또한, 정책사업으로 사업량 확대를 통한 경영기반을 다질 수 있었으며, 이들이 농협의 자체사업으로 전환될 때에 활용할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쌓게 되었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농용자재의 생산과 배분, 농산물 유통과 가공, 농업자금의 공급 등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기업에 맡길 경우, 불공정거래가 발생하거나 독점력 행사로 농업인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농협을 통하여 정책사업을 추진할 경우 생산자단체인 농협을 지원한다는 명분과 함께 정책추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기관을 따로 설립할 필요도 없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개도국에의 시사점
한국농협이 종합농협으로 발전한 모델은 개도국에게 적합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농업과 농촌의 개발에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중요하고, 종합농협체제를 바탕으로 정부의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유리한 경우, 한국농협과 같이 정부주도하의 농협 설립 후 농업인(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선조직(先組織), 후참여(後參與)’ 방식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합이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조직의 규모화가 필수적이다. 한국농협의 경우, 농협발족 후 단위조합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까지 약 14년 정도 소요되었다. 즉, 1961년 농협 발족 후 전국적으로 이동조합 합병이 성공한 시점(1974년) 이후 도약할 수 있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설립초기에는 자체사업 수행이 어려우므로 정부 정책대행사업을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으며, 농협조직의 운영 효율화를 위해서는 한국농협의 2단계 조직구조(회원조합-중앙회)는 좋은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 전형적인 협동조합의 조직체계는 단위조합-지역연합조합-전국연합회의 3단계 사업조직으로 볼 수 있으나, 운영 효율화를 위해서는 회원조합-중앙회의 2단계로 축소하여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2단계 조직체계는 운영 효율화뿐만 아니라 3단계 조직구조에 비해 농업인(조합원)들의 농협에 대한 요구사항이 보다 빨리 상부에 전달될 수 있는 제도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농업인(조합원)의 조합사업 참여를 높이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 환경이 변함에 따라 농협도 그에 맞추어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한국농협의 경우,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사업추진으로 농촌발전과 국가발전에 기여하였으며, 환경변화에 따라 조직구조를 변화시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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