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트르담의 꼽추’에 등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2019년 발생한 화재 사건 당시, 전 세계 음악계가 우려했던 대성당 내 대형 파이프오르간이 기적적으로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성당 성직자들 및 관리자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불길에 가장 인접해 있던 파이프오르간을 위험을 무릅쓰고 사수하여 오르간에 큰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이와 같이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특별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오르간(organ)이란 악기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오르간이란 말은 ‘기구’, ‘도구’라는 의미의 희랍어 ‘Organon’에서 유래되었으며 14세기 중엽에는 ‘악기의 여왕’으로 불리워졌고, 천재음악가 모차르트도 ‘악기 중의 왕’으로 오르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오르간은 건반을 통해 바람을 제어해 파이프를 울려 소리를 내기까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작동하는 독특한 악기로, 그런 의미에서 ‘오르간’이란 이름이 이 악기를 표현하는 적절하고 타당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르간의 종류는 다양한데, 엄밀한 의미의 오르간은 2단 이상의 손건반(manual)과 함께 발건반(pedal)을 갖추고, 바람을 일으키는 장치를 통하여 일정한 압력을 만들어 이 때 발생하는 바람을 건반을 누를 때마다 각 파이프로 보내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을 말한다.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주변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게 된 전자오르간은 스피커를 통하여 이러한 파이프오르간의 자연음을 모방한 전자음을 창출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피아노가 보급되기 전에 학교에서 많이 사용되었던 풍금은 바람을 빨아들이는 방식의 리드오르간이다. 풍금이 아닌 본격적인 오르간, 즉 ‘파이프오르간’은 1924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울 명동성당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파이프오르간은 보통 케이스에 의해 분리된 여러 개의 파이프 무리들이 복합되어 하나의 악기를 이루고 있다. 각 파이프 무리들은 바람상자 위에 있으며 송풍상자로부터 일정한 바람을 보내는데, 바람상자는 공기판이 내장되어 있어 오르간의 콘솔(console, 연주대)과 액션으로 연결되어 있다. 파이프오르간의 세부 구조는 발음부, 송풍부, 조작부 (콘솔)로 나뉘어지는데, 발음부는 파이프 발음을 위한 공기의 진동을 만드는 관을 말하며, 긴 파이프일수록 낮은 음을 내며 관의 길이와 단면적의 비율, 마우스피스의 형상은 음색을 좌우한다. 관의 길이와 음높이를 표시하는 단위로 피트(feet)가 쓰이며, 소형인 2인치 (약 5cm)에서 32피트 (약 10m)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송풍부는 발음에 필요한 압축공기를 만들고 기압을 조정하여 파이프로 보내는 부분으로, 바람상자는 직접 파이프와 연결되어 있고 액션으로 연결된 콘솔의 건반과 스톱(stop)에 의하여 연주자가 직접 이를 조작한다. 콘솔은 연주자가 직접 조작하는 건반과 다양한 음색을 얻기 위한 장치인 스톱, 이러한 조작들을 바람상자와 파이프 등에 전하는 액션 등을 말한다 (그림 1).
[그림 1] (A) 오르간의 구조, (B) 롯데 콘서트 홀 파이프오르간 전경 및 (C) 콘솔, (D) 강원도 춘천의 전자오르간.
(출처: (A) Wikipedia, (B), (C) 롯데 콘서트 홀)
건반은 양손으로 조작하는 손건반과 양쪽 발의 발끝과 발뒤꿈치로 조작하는 발건반이 있다. 손건반은 피아노 건반과 달리 2열부터 5열까지 구비되어 있으며 음역은 각각의 음색을 띠는 스톱의 이용으로 10옥타브까지도 낼 수 있다. 실제로 오르간의 음역은 같은 건반을 누르더라도 어떤 스톱과 어떤 길이의 파이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져서 악보상의 음역보다도 실제 음역은 훨씬 더 넓어진다. 스톱은 연주자가 이를 조작함으로써 음고뿐 아니라 건반이 특색 있는 음색을 나타나게 하는데, 그 수가 소형 오르간은 20~30개, 대형은 60개 이상이다. 발건반은 대부분 16피트나 32피트와 같은 거대한 파이프를 관장한다.
오르간의 주법은 특히 손건반의 경우 피아노와 유사하나 오르간에는 특수한 레가토주법이 있다. 이것은 여운을 내는 피아노와 달리 각각의 건반을 지속적으로 연결하여 누름으로써 음을 지속하면서 연주하는 기법을 말하며 오르간 주법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르간에서는 건반을 눌렀을 때 음의 강도가 동일하게 지속되기 때문에 건반을 ‘누르고 떼어서’ 음의 길이를 달리 함으로써 음악의 강약을 표현해 내는 아티큘레이션 (articulation)이란 주법이 사용되는데, 이것이 오르간 연주자가 음악적으로 악센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다. 발건반은 오르간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으로, 눈으로 보지 않고 연주하게 되므로 연주자는 건반과 발과의 관계를 외우고 정확하게 연주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레가토주법과 아티큘레이션을 기초로 하는 오르간 연주는 피아노 연주와 달리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상당한 정도의 체력 소모를 요하게 된다. 또한 연주 시 양쪽 발끝과 발뒤꿈치를 구분하여 사용하게 되어 있어 악보 상에 별도로 지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손건반과 발건반에 관한 기법 및 여러 스톱의 조작과 배합 기술을 통하여 오케스트라에 비유될 만큼 다양한 연주가 이루어진다.
나의 오르간의 역사는 약 3년 정도로 비교적 짧지만 (물론, 내가 연주하는 오르간은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아닌 전자오르간이다), 그동안 틈틈이 다져왔던 피아노의 연주 실력에 힘입어 오르간 연주에 상대적으로 쉽게 입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생소하고 어려웠던 것이 발건반의 연주인데, 피아노 연주를 할 때에는 가끔 다른 생각을 하며 조금은 안이하게 연주에 임할 수도 있지만, 오르간의 경우는 조금만 연주에 집중을 하지 않거나 자만심(?)에 빠지게 되면 여지없이 발건반에서 실수를 하게 되고 오르간과 직접 연결된 대형 스피커를 통해 이러한 실수를 누구라도 알아채게 된다. 특히 지난 3년간 공교롭게도 COVID-19로 인해 성가대의 노래가 금지된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매주 일요일마다 반복되는 독주 무대를 통해 나의 오르간 실력은 가감없이 청중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칼럼을 통해 심혈관 중재학회 회원 여러분들에게 악기의 종류와 상관없이 취미 생활로 악기 연주를 해 볼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기존 연구에 의하면 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를 이용해 음악을 들을 때의 두뇌활동을 조사해 보니 광범위하게 뇌 전체가 활성화 되었는데,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보다 실제로 악기를 연주할 때 좌우 대뇌 반구 사이에 위치한 뇌들보 (corpus callosum) 부위에 많은 자극이 가해져 신경전달물질이 뇌의 전 영역에 걸쳐 활발히 움직였다고 한다. 또한 최근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서는 인지 장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악기를 직접 연주한 경우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전반적인 인지기능 및 수행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보고하였다 (그림 2).
이와 더불어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손가락을 이용한 악기 연주를 통하여 뇌의 발달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특히 미세하고 정확한 고도의 중재술을 요하는 interventional cardiologist에게는 procedural outcomes도 향상시킬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끝으로 나의 개인적인 소망은 서울 명동성당의 대형 파이프오르간에서 아주 짧게나마 연주를 해보는 것인데 아쉽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후문에 의하면 명동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의 선발 기준이 38세 미만이라고 한다.
[그림 2] Effects of instrument playing in the domain of executive function depending on the type of cognitive engagement (Front Psychol 2019;1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