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아내, 갓 돌이 지난 아이와 함께 영국 연수길에 올랐습니다. 3년 전 심혈관 스텐트 연구를 수행하던 런던대학교 존 마틴 교수(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런던퀸메리대학교 앤서니 매더 교수와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영국으로 연수지를 선택했습니다. 런던 북부에 세 식구가 지낼 만한 아담한 집을 빌려 영국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초기 정착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가구를 직접 조립하고,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계량기를 측정해서 기록하는 일 등은 차츰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평일에는 도심부에 위치한 런던퀸메리대학교 윌리엄 하비 연구소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면서 앤서니 매더 교수님과 아침 회의와 연구 모임을 했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계신 존 마틴 교수님에게도 종종 찾아가 연구 계획을 논의하였습니다. 주말에는 집 근처 공원이나 근교에 나가 산책도 하고 아이 걸음마 연습도 시키곤 하였습니다. 비교적 선선한 여름이 가고 10월이 지나자 해가 점점 짧아져 서머 타임이 해제되니 오후 4시가 넘으면 날이 어둑해져 영국의 긴 겨울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말부터는 크리스마스 축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이웃들, 직장 동료들과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고 크리스마스 식사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수나롭게 한 해를 마무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로 퍼지던 코로나-19가 영국에도 들이닥쳤습니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런던을 포함한 영국 전역에 봉쇄령이 내려졌고,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재택 체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이웃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다니던 연구소가 폐쇄되어 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기초 실험 대신 임상 연구로 전환하여 논문을 준비하였으며, 화상회의를 하며 공동연구를 추진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하였습니다. 2020년 봄이 왔지만 팬데믹의 여파로 연수 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어 안타까웠으며, 주택임대차 재계약이 무산되어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이사해야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주거지를 옮겨 다시 정착한 다음부터는 모든 생필품과 식료품을 배달시키면서 철저히 집 안에서만 생활했습니다. 2020년 9월이 되자 잠시 수그러드는 것 같았던 바이러스가 다시 빠르게 확산되었고, 그에 따라 더욱 강력한 봉쇄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이 시기 우리 가족이 유일하게 외출한 일은 독감 예방 접종을 하려고 동네 약국에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한 해를 거의 집에서 보내다시피 하고 2021년 1월 귀국을 앞두었을 때 영국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영국발 직항편이 모두 멈춰 섰습니다. 항공편 중단이 한두 주 간격으로 계속 연장되더니 결국 우리가 예약한 항공편이 결항 처리되었습니다. 짐 배송과 항공기 탑승 및 입국을 위한 바이러스 음성확인서 발급 검사를 다시 예약해야 했고 주택임대차 계약 기간까지 끝나는 바람에 더는 직항편을 기다릴 수 없게 되면서 경유편을 이용해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마스크를 아직 쓰지 못하는 아들에게 매일 마스크 쓰는 연습을 시켰고, 아들을 유모차에 태워 레인 커버로 방어한 채 프랑스를 경유하여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예기치 못한 바이러스 유행으로 연수 생활이 차질을 빚었고 귀국 전 작별인사 역시 화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바쁜 일정으로 평소 자주 뵙기 힘들었던 존 마틴 교수님, 앤서니 매더 교수님과 화상으로 자주 모임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난 1월에는 전남대학교병원과 런던대학교 간 학술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성과를 얻어 보람을 느꼈으며 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도록 앞으로 꾸준히 노력하려고 합니다. 또 틈틈이 안부를 물어주신 순환기내과 교수님들과 가족, 친구들의 격려가 팬데믹 가운데 타국살이를 하는 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비록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팬데믹이 오기 전 수개월 간의 런던 생활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제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연수 생활에 도움을 주신 대학과 병원의 모든 분, 귀국 후 외래에서 저를 반겨주신 환자분들 그리고 어린아이를 돌보느라 힘들 텐데도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는 아내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사진] 왼쪽부터 존 마틴 교수님, 필자, 앤서니 매더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