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9 No.1
KSIC Newsletter
Published by Korean Society of Interventional Cardiology

JANUARY 2023
Culture

매혹의 금단, 바이크라이딩(Bike Riding)


이봉기  | 강원대학교병원 심장내과
남자의 이분법
바이크를 타고 싶어 하는 남자
바이크를 타는 남자
가끔 여성라이더도 출몰하며 이들은 여신으로 추앙된다.

엔진 달린 이륜차의 이름
'오토바이'라 일컬으면 쌈마이의 남루한 땀내가 흥건하고,
'모터사이클'이라 부르면 과한 설명적 피로감이 권태롭다.
라이더들은 ‘바이크’라 부르기를 즐긴다.
하지만 ‘bike’를 들을 때 열 중 여덟은 자전거를 떠올린다.

체통머리 없이 의사가 오토바이를?
안심하시라. 헬멧을 쓰면 누군지 모른다.

무서워
바이크는 실제로 위험하다.

시야가 넓고 기동이 민첩하여 사고 발생률은 자동차보다 적게 나타나고 있지만 사고 발생시의 치명률은 당연히도 높다. 사고시 라이더를 보호할 갑주는 제대로 갖춰도 헬멧, 질긴 재킷과 바지, 장갑, 부츠가 전부이다. 생길 찰과상이 덜 생길 뿐 골절이나 사망을 막아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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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력이 두배가 될 때 운동에너지는 네 배가 된다.

때문에 그 나마의 유효한 안전보장 도구는 바이크를 통제 가능한 속력으로 유지하는 겸손과 절제력 뿐이다. 하지만 엔진 배기량 1,000cc 이상의 소위 리터급 바이크가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출력, 그 압도적인 가속이 선사하는 쾌감은 참아내기 어렵다. 그 괴리를 이겨내야만 코너에서 덧없이 밀려 도로 밖으로 날아가거나 속절없이 장애물에 들이박는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저속이라면 혹 날아가거나 부딪혀도 생존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고의 형태에 따라 생존가능성은 달라진다. 미끄러지는 사고라면 보호장비 착용 시 150km/h로도 살 수 있지만, 가로수에 충돌한다면 60km/h로도 죽을 수 있다. 게다가 살아도 장애의 그림자가 남을 수 있는 함정.
그래서, 바이크라이딩은 일반적으로는 함부로 권하지 못하는 금단의 스포츠이다. 비록 단기통 저배기량이었어도 20대 시절 잠깐의 라이딩의 기억은 흐리지만 아찔하다. 내가 다시 바이크에 눈을 두기 시작한 때는 자동차운전이 얌전해진 40대 후반이었다. 금단의 통념이 부담스러운 라이더들은 자신의 취미를 여간해서는 드러내지 않는다. 혹시라도 라이더임이 밝혀지면 많은 이들은 철딱서니 없는 빗나간 중년으로 흘겨보기도 하고, 내일이라도 부고를 접할 듯 걱정스럽게 바라보기도 하며, 일부는 진심으로 부러워 하기도 한다. 드물게 가끔은 자신이 라이더임을 밝히는 ‘바밍아웃(바이크커밍아웃)’ 동지를 만나기도 하는데 자연스럽게 이들은 은밀한 동행을 획책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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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2020년 4월. 소양호옛길에서 BMW S1000XR과 함께


살아있는 라이더를 위한 파반느

바이크라이딩시에도 당연히 방어운전이 필요하다. 승용차 운전은 심지어 문자를 보내는 느슨함도 허용하지만 바이크라이딩에서는 어림도 없다. 바이크는 승용차 운전이 능한 사람이 타야 당연히도 그나마의 위험이 감소한다. 바이크라이더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는 승용차 운전자들이다. 그래서, 승용차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안전한 바이크라이딩에 필수이고, 노련한 승용차 운전자는 훌륭한 바이크라이더가 될 수 있다. 선회와 정지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바이크는 광폭해진다. 이러한 통제곤란의 위기는 거의가 과속, 신호위반, 정비불량에서 발생한다. 코너에서 밀려나갔던 경험이나, 서고 싶은데 서지 못하여 앞차의 트렁크가 눈 앞으로 약진하는 경험을 하고 나면 속력이 가지는 저항할 수 없는 물리력을 절감하게 된다. 이를 겪으면서도 저속사고에서 생존한 이들은 이후 도로에서 겸손해 진다. 그래서 경험치가 적은 이들이 감당 못할 성능의 머신을 타게 되면 사고위험은 급증한다. 라이더로 입문하는 이들에게 저배기량부터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강력하게 권하는 이유이다.

내가 직전에 소유했던 스즈키사의 GSX1300R, 소위 '하야부사'는 바이크라이더라면 한 번쯤은 꿈꾸는 상징적인 역사를 가진 모델이다. 300 Km/h를 넘어서는 괴력의 머신이지만 나는 지방도로 코너에서 70을 넘기지 않았고 직선도로에서도 100을 넘지 않았다.

원심력과 관성의 우주적인 절대성을 체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라고 만든 머신으로 배달오토바이와 나란히 길을 가는 인지부조화를 겪던 끝에 결국 하야부사는 6개월만에 처분하였다.
과속이나 난폭운전의 일탈을 저지르지 않아도 때로는 음주운전차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으로 달려오는 식의 불가항력 상황은 결백한 라이더에게도 치명적이다. 그래서, 음주/졸음 운전자가 창궐하는 야간 운행은 많은 라이더들이 금기로 삼는다. 다행인 것은 도로상황이 계속 좋아지고 있고 자동차들의 성능과 안전장치가 개선되면서 라이더들에게도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다. 예로서 미시령을 관통하는 양양고속도로가 뚫린 후에는 춘천에서 속초로 가는 지방 국도의 차량 통행량이 급감하였고 이렇게 비어진 쾌적한 도로는 bike와 bicycle의 천국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첨단의 전자장비가 기본 탑재된 요즈음의 고급 바이크들은 운전자의 실수를 상당히 보정해 주기에, 의지대로 즉시 멈출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속도 안에서는 상당히 안전해졌다. 때문인지 해가 갈수록 주말에는 라이더들의 떼빙(group driving)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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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2021년 3월. 철원 노동당사에서 Suzuki GSX1300R ‘하야부사’와 함께


그러니까, 그 위험한 것은 왜 타냐고

재미있으니까.
쾌청한 날씨에 쾌적한 공기를 가르며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한적한 도로의 굽이를 돌아나가는 경험은 50세를 넘어선 삶을 돌이켜봐도 몇 순위 안에 드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이크라이딩은 특히 봄과 가을의 흥취를 가장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즐길 수 있는 수단이다. 쉬엄쉬엄 달리는 도로를 둘러싼 신록, 혹은 단풍의 감동은 시야를 가릴 것 없는 투명한 헬멧쉴드를 뚫고 뇌리에 온전히 입력된다. 사방을 막는 필러와 창틀과 천장과 틴팅된 자동차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박제된 풍경의 안타까움도, 온 몸으로 전경을 즐길 수 있지만 헉헉대며 밟아야 한 시간에 20Km를 겨우 가는 자전거의 아쉬움도 감히 bike의 미덕에는 닿지 못한다.

저도 타고 싶어요

바이크라이딩을 세칭(世稱)하는 '남자의 로망'이라는 상투어에는, 그 매력은 인정하면서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드높은 장벽의 존재감이 묻어난다. 바이크라이더를 바라보는 시선은 스펙트럼이 광활해서 극혐자로부터 성애자에 이른다. 여기 올린 사진을 보면서도 인상을 쓰시는 분들부터 침을 꿀꺽 삼키는 분들까지 거의 정규분포가 이루어 지리라 추정해본다.
침이 나오는 분들은 입문을 꿈꿔 볼 수도 있겠지만, 진입장벽이 아이거북벽에 필적한다는 것은 각오하실 것. 집안에 헬멧과 라이딩기어가 굴러다니는 것을 목격 시 경악하지 않는 배우자가 있으시다면 블랙스완과 등가로 보셔도 되겠다.
극복하는 방법은 다음의 두가지로 대표된다.

- 바이크 구입 전 배우자의 허락을 얻는다
- 바이크 구입 후 배우자의 용서를 받는다

물론 가능성은 둘 다 0에 수렴한다.
바이크 테크트리(Tech Tree)

뭐 어찌하여 바이크를 장만할 수 있는 상황이 이루어졌다 하자. 무엇을 탈 것인가?
전술한대로 저배기량부터 승급을 이루어가는 것이 안전한 길이라 하였지만 중년의 심장전문의가 125cc 짜리 소형오토바이를 타는 모양새는 그리 조화롭지 않은 심상을 준다. 그리고, 기종변경의 단계에서는 언제나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흔히 카메라나 오디오의 취미를 가진 분들은 ‘한방에 최상기종으로 가는 것이 결국은 아끼는 길’이라 외친다. 동의한다. 하지만 바이크라이딩에서 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감당 못하는 고속에서 우주를 이루는 물리력을 체감하는 순간을 혹시라도 맞는다면 이는 라이더가 우주먼지로 회귀하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저속이라면 살 길이 생길 수도 있다. 뭐 체면의 삭감을 무릅쓰고 125cc에 익숙해졌다 치자. 그 다음으로는 소위 ‘쿼터급’이라 불리우는 250~400cc 배기량의 기종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냥 사서 타고 싶겠지만 ‘2종소형운전면허’라는 법의 장벽이 가로막는다. 125cc까지는 일반 1, 2종 보통운전면허로 탈 수 있지만 이를 초과하는 대배기량 바이크들은 반드시 2종소형면허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2종소형면허 시험의 난이도는 승용차면허에 비해 압도적인 극악성을 보인다. 난이도를 계량하여 log를 씌우면 비슷해 질 듯…

그렇게, 여차저차 2종소형운전면허 취득에 성공했다 치자.
쿼터급을 경험해봐도 좋고 소위 ‘미들급’이라 불리우는 500~800cc의 바이크로 올라가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 어중간한 기종들은 성능과 감성도 어중간해서 쉽게 싫증이 나게 된다. 미들급으로 만족하며 유지하는 라이더들도 있지만 많은 경우 미들급 바이크는 리터급(900cc 이상) 바이크를 위한 마중물의 역할로 임무를 다하게 된다. 해서 리터급을 타게 되었다 치자. 축하드린다. 진입장벽들을 무사히 넘어오셨다.
그런데, 바이커들의 정글로 입성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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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2022년 6월. 속초에서 BMW R1200GS Rally Adventure와 함께


무엇을 어디에서 사는가

바이크를 타고 신호대기라도 하고 있으면 왠지 오지랖 ENFP의 MBTI를 가졌을 듯한 옆 차선 운전자가 흔히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그 오토바이 얼마에요?”
결국 매력적인 물건을 보았을 때 궁극의 궁금증이 가격이라는 것은 화폐경제를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이거늘, 바이크의 가격은 유난히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당연히 자동차보다 싸야 할 것 같고, 자전거보다는 비싼 정도일 것 같은데 웬만한 자동차보다 비싼 바이크가 꽤나 많다. 일본산, 유럽산, 미국산이 인정을 받는 세태이고 한국산은 바이크에서는 맥을 못춘다. 배달용 스쿠터 정도가 국산의 주류이고 대배기량 바이크에서는 전혀 힘을 못쓰고 있다.
결국 일본, 유럽, 미국산에서 고르게 되는데 특징과 평판은 다음과 같다.

- 일본산: 신뢰할 수 있는 품질, 고성능, 우수한 내구성,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어중간한 하차감

- 유럽산: 품질보다는 감성, 고성능, 고혹적인 디자인, 극악한 가격, 부러움이 꽃피는 뛰어난 하차감

- 미국산: 할리(Harley-Davidson), 가끔은 인디언(Indian Motorcycle)

예산이 넘쳐 흐른다면 신차를 사도 문제 없겠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의 interventional cardiologist라서 그럴 리는 없으리라 본다.

그래서 대개 중고바이크를 돌아보게 되는데 이는 상당히 합리적인 수순이다.

바이크의 감가상각은 무시무시하고 처분하는 이들은 성능의 저하보다는 싫증과 새 기종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팔아 치우는 경우가 많기에 괜찮은 물건이 신차 대비 꽤나 저렴한 가격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무사고에 길지 않은 주행거리로 고른다면 대개는 문제가 없다.
‘PASSO’와 ‘바튜매(바이크튜닝매니아)’가 중고바이크 거래의 당근마켓이자 중고나라 격.
일단 천만원 정도가 쓸만한 중고 엔트리 모델의 바닥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뻥 뚫려있다.

할리와 비머

바이크를 타는 이들이 기종의 승급을 반복하다 보면 대개는 Harley-Davison(‘할리’)의 고급기종이나 BMW(‘비머’)의 고급기종으로 수렴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저속 순항에 어울리는 중후장대한 물성이다(물론 달려야 할 때는 야수의 근육이 느껴진다). 그러한 바 중년 이후의 점잖고 여유로운 라이더들이 주요 소비자로 포진한다. 특히 비머는 약속이라도 한 듯 R12x0GS시리즈에서 plateau를 형성한다. 그래서, 주말의 경춘국도는 가죽이나 진으로 둘러싼 할리라이더의 떼와 교복 또는 우주복과도 같은 뭔가를 입은 비머라이더의 떼로 점령당한다. 참고로 현재 내 바이크는 중고로 구매한 BMW R1200GS Rally Adventure 2018년식.
언젠가는 할리를 타고 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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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2022년 6월. 속초에서 연세원주의대 윤영진 교수와 함께.


왜 그들은 떼빙을 하는가
단체로 털털거리며 국도를 지나는 라이더들을 보면 왜 저럴까, 뭐하러 갈까 하는 의문도 문득 떠오를 것이다. 목적지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동차라면, 라이더들은 바이크를 타기 위해 목적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대개의 목적지는 시덥잖은 교외의 맛집들이다.다수의 떼빙은 다양한 문제도 양산한다. 그래서, 2~3인의 소규모 동행을 즐기는 이들도 많고 나도 이 부류이다.요즈음은 블루투스를 이용하여 실시간으로 양방향 대화가 가능한 무선통신장치를 헬멧에 장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바이크를 탄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불편이 없다. 수시간의 라이딩을 함께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친목 효과는 사교용 골프 이상이라는 것이 나의 경험이다. 하지만 동행 가능한 라이더가 아프리카펭귄만큼 희귀하다는 것이 함정.
Epilogue
KSIC의 뉴스레터에서 이렇게나 발칙하고 불순한 주제가 다루어지는 경험이 당혹스러우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누군가는 가슴속에 문득 피어 오르는 주책스런 호기심에 짐짓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다.
혹은 숨어있던 shy rider가 있으시다면 양지에서 활개치는 필자의 행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실 수도.
동물은 이동을 욕망한다. 이동에 능한 개체들만이 살아남았을 진화의 결과일 것이다.
과학기술을 장착한 인간은 별들을 오가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대부분의 인류는 지상의 탈 것을 탐닉한다. 그 중 관성계의 물리력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지표를 유영하는 바이크라이딩은 단연 경험치의 정점을 차지한다. 쉽게 허락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