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VC 파이프를 입은 색다른 창고를 짓다
– 아산시 농업기술센터 농기계보관창고
개요
- 위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염성리 186-2
- 용도: 창고시설
- 대지면적: 15,403m2
- 건축면적: 3,966.02m2
- 연면적: 6,498.79m2
- 규모: 지상 1층
- 건폐율: 25.75%
- 용적률: 42.19%
- 구조: 일반철골구조
- 설계: 구국현 (건축사사무소 아뜰리에 마루)
- 시공: (주)에스에이치건설
- 설계 기간: 2016. 09.∼2017. 03.
- 시공 기간: 2017. 06.∼2017. 10.
- 발주청: 아산시 농업기술센터
- 수상: 2018년 대한민국 신진건축사 대상(우수상), 2019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특별상)
농기계보관창고 설계 의뢰를 받다
2016년 당시에 아산시 농업기술센터는 기존 농기계보관창고의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창고 증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해당 농기계보관창고는 에너지 효율 검토 대상의 건축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산시가 공공건축물에 대해 에너지 절약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까닭에(아산시의 모든 공공건축물은 패시브 인증을 받고 있다) 패시브 협회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에게 농기계보관창고 설계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발주청은 기존의 창고 건물과 비슷한 구조와 면적의 건축물을 요구하였으며 강력한 배기팬을 설치하는 등 환기에 대한 문제를 꼭 해결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기존 창고의 환기 시스템만으로는 요구되는 환기 용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으로 창고 안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건강이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용자와 주민들, 그리고 아이들을 생각하다
농기계보관창고가 들어설 대상지는 아산로에서 연결된 도로(폭 8m 및 폭 6m)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대상지 주변에는 읍사무소, 파출소, 초등학교, 논 등이 위치하며, 대상지 내에는 아산시 농업기술센터와 농기계 대여점이 자리하고 있다. 주로 주변 농지를 경작하는 주민들이 창고에 보관된 농기계를 대여하고 있어 주민들의 접근에 대한 고려가 중요하였다. 한편, 대상지 주변의 현황을 파악하던 중에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8m 도로를 중심으로 마주하고 있는 염치초등학교였다. 초등학교 정문에서 증축 예정지를 바라보면서 발주처에서 요구한 2층 규모의 창고건물이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올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강력한 환기 시스템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설계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발주처에서 요구한 근무 환경의 개선과 함께 초등학생과 주민들이 느끼게 될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높이는 최대한 낮추면서 가벼운 벽 구조를 가진 입면 디자인이 요구되었다.
강력한 환기시스템에 대한 고민
건축 설계를 하는 사람들은 늘상 의뢰받은 작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즐거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필자 역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늘 고민한다. 이번 작업에서는 농기계보관창고의 쓰임에 적합한 강력한 환기 시스템이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먼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고가 철골조와 샌드위치 패널을 이용하여 건축되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가 찾은 시스템은 PVC 파이프(PIPE)를 활용한 자연 환기 방식이었다. 모든 외벽을 열어 둔다면 사용자들이 요구하는 별도의 환기 시스템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른 것이다. 그 결과 열려 있는 외벽을 PVC 파이프로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아이디어와 작업 과정
- 아이디어의 도출
농기계보관창고는 농업기술센터가 사용하는 농기계 창고로서 농기계와 차량을 보관하고 있다가 농민이 필요한 경우 대여해 주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기존의 농기계보관창고에서는 환풍기가 창고의 모든 환기를 책임지고 있었다. 하지만 농기계를 대여하기 위해 창고 내에서 시동을 걸게 되면 엄청난 배기가스와 분진이 발생하여 환풍기만으로는 거의 환기와 통풍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한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농기계보관창고의 북측에는 초등학교가 위치해 있다. 설계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다소 삭막하게 다가올 수 있는 창고의 입면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색다른 입면을 표현하고 싶었다.
발주처와의 협의 과정에서 환기만 잘 이루어진다면 창문은 없어도 상관없으며 빗물이 건물 내부로 들이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가벼운 벽, 시야와 채광을 열어주는 벽, 환기가 잘 되는 벽, 그리고 비를 막아주는 벽을 구상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거듭되는 고민의 결과로 찾은 외벽 재료가 PVC 파이프였다. 벽면의 전체를 외부와 관통하는 파이프로 채워 농기계에서 배출되는 매연이 건물 밖으로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상하였다.
- PVC 시스템 자연순환시설(고물상)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폐PVC 파이프를 업사이클링(Upcycling)하여 기존의 창고시설과는 전혀 다른 파사드를 만들려고 계획하였다.
- 1. 폐PVC 파이프를 업사이클링하여 일정한 규격으로 잘라서 쌓는다.
- 2. 일정한 규격의 PVC 파이프를 쌓아 건축물 구조체와 함께 쌓아 올린다.
- 3. 파이프를 이용하게 되면 환기는 물론 통풍도 원활하여 습기 제거의 효율이 극대화된다.
- 4. 열려있는 외피 디자인을 통해 외부의 채광이 자연스럽게 유입된다.
- 5. 원통형의 파이프를 통해 내부 및 외부에서 시선 위치에 따라 가시각에 변화를 줄 수 있다.
- 6. 착공 이전에 PVC 파이프의 목업(mock-up, 실물 크기의 모형) 작업을 통해 실제 환기의 정도와 디자인을 확인한다.
- 목업 작업과 설득 과정 철물점에서 PVC 파이프를 구입한 뒤에 기능공들과 함께 사무실 주차장과 사무실 내부에서 목업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상상 이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와 사무실 직원은 목업 작업을 사무실 내부적으로 마무리한 다음에 창고 모형과 모델링 동영상을 들고 실무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설계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4~5명이 참석한 소규모 회의는 창고 외벽을 PVC 파이프로 계획하여 환기 시스템을 별도로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중간에 창고를 실제로 사용하는 실무자 외에 농업기술센터 여러 실과의 담당자들이 참석하게 되었으며, 해당 회의는 결국 농업기술센터 소장님까지 참석한 후에야 마무리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관계자들의 주요 관심사는 PVC 파이프를 적용한 건축이 정말 가능한 것인지와 선행 사례가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필자는 PVC 파이프를 이용해 계획한 경험이 없었고 마땅한 선행 사례도 없었다. 하지만 기회를 한 번 주시면 최선을 다해 보겠노라고 부탁에 가까운 설명을 한 뒤 최종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 2층 규모를 요구한 발주처를 설득한 끝에 1층으로 계획하되 부족한 면적은 선반을 활용하여 확보하기로 결정하였다. 또 용마루를 지붕 장변이 아닌 단변으로 계획하여 건축 높이를 최대한 낮출 수 있었다.
<목업 작업을 하는 모습>
<시공 과정에서 진행된 여러 차례의 협의 과정>
- 폐PVC 파이프의 활용 문제 당초 충청남도 내에 있는 자원순환시설에서 구할 수 있는 PVC 파이프를 사용하여 창고 외벽을 시공하려고 계획하였다. 하지만 설계 및 시공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이 많아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자원순환시설에서 구할 수 있는 PVC 파이프들의 규격이 모두 달랐고 이로 인해 실시설계 과정에서 정확한 수량 산출이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고 충청남도의 각 지역에서 아산시에 위치한 현장까지의 운반비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기능성과 예산효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름 150mm와 길이 30~40cm의 규격을 가진 PVC 파이프를 사용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조금 색다른 창고를 짓다
비록 농기계를 보관하는 창고이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창고의 모습이 아닌 조금 색다른 모습의 창고가 지어졌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발주처의 요구사항은 물론 창고에 인접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및 인근 주민들의 일상 생활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다. 현재의 농기계창고를 이용하는 이용자와 주민들, 그리고 아이들은 창고의 새로운 파사드를 두고 '모두'를 생각했음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준공 이후 창고는 환풍기를 돌릴 필요가 없어져 전기가 절감될뿐만 아니라 통풍이 잘되어 농기계의 보관과 관리에도 유리하다. 또 30cm 이상의 길이를 가진 파이프에 비가 들이칠 염려도 거의 없고 환기가 잘되어 습기 제거도 원활하다. 현재 센터 직원들은 환기 문제를 해결하여 쾌적할뿐만 아니라 주변을 해치지 않는 모습의 창고 건축물에 만족하고 있다. 건축에 정답은 없지만 모범 답안에 가까운 어느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 설계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소임이라는 생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앞으로도 아산시 농업기술센터 농기계보관창고가 본연의 역할을 다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