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페스티벌이 가져다준 매직

조현영   │  아트앤소울 대표,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페스티벌이 가져다준 매직
때론 인생에 마법이라는 것이 일어난다. 전혀 예기치 않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바꿀 만큼 강력한 끌림을 경험하는 순간 말이다. 마법처럼 가게 된 여행, 마법 같이 만나게 된 사람, 마법 같이 듣게 된 음악.

내 인생에도 마법이 있었다. 20살 어느 여름날 아버지는 음악가의 길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내게 비행기 티켓 한 장을 내미셨다. 그렇게 고민되면 클래식의 고장인 유럽에 가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오라고 하셨다. 혼자 가게 된 여행이라 망설였지만 왠지 유럽이 나에게 먼 북소리를 들려주는 듯했고 알 수 없는 강렬한 끌림에 이끌려 무턱대고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됐다. 그때의 나에게 유럽행 티켓은 지금의 우주여행 티켓과 같은 마법이었다. 그렇게 난 처음으로 오스트리아 땅을 밟았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던 축제의 도시에 첫 발을 디뎠다.

가끔 생각해본다. 내가 그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보지 않았더라면 음악을 계속하고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날 그 도시의 분위기와 바람의 온도, 공기의 냄새,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모두 기억난다. 온통 도시가 축제를 위해 세팅된 무대 같았다. 그들은 온종일 음악을 듣고 느끼며 따라 불렀다. 시골의 조그만 잡화점 할머니가 초콜릿을 팔면서도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흥얼거린다면 믿겠는가? 그들에게 클래식은 특별함이라기보다 일상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도시의 중심인 대성당을 기점으로 사방에서 음악이 넘쳐흘렀다. 주요 축제가 열리는 축제 극장 안에는 큰 콘서트나 오페라 공연이 열리는 대축제 극장, 동굴을 뚫어 만든 무대가 있는 여름 승마 학교 펠젠라이트슐레,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모차르트 하우스 등이 있는데, 각양각색의 연주가 펼쳐진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아침에는 일터로 발걸음을 향하지만 저녁엔 친구들과 편하게 클래식을 즐길 줄 아는 그들과 함께라면 클래식을 하는 일이 상당히 멋지고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연히 오게 된 도시에서 만난 축제는 내 인생에 매직을 가져왔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날은 클래식이 인생의 전부가 된 첫날이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화려한 의상에 품격 있는 자태로 고급 콘서트홀에서 즐기는 실내 음악회도 있지만 시청 앞 야외 음악회, 담요를 깔고 앉아 들을 수 있는 피크닉 클래식과 스크린 음악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모두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축제를 즐기는 데는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무의미했다. 단지 음악을 즐기려는 열정, 예술의 정취를 느끼려는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도시 도처에서 음악, 연극, 전시, 발레 공연이 넘쳐났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이 잘츠부르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성대한 축제를 하는 줄은 몰랐다. 이 도시는 모차르트가 태어나기 전엔 화폐가치가 있던 소금이 나오는 도시로 유명했지만, 페스티벌이 처음 시작된 1920년부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관심받는 축제의 도시가 됐다.

유럽의 여름은 온통 클래식 축제다. 다양한 여러 축제들이 있지만 클래식의 본산답게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전 유럽이 클래식으로 넘실거린다. 내 인생 최초의 클래식 축제였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만들어졌다. 실의에 찬 사람들에게 클래식으로 희망을 주려했다니 역시 모차르트의 후예답다. 모름지기 축제란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식이 아니던가. 축제에 초대된 모든 이들은 다 행복해 보인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리는 루체른 페스티벌, 스위스와 이탈리아 경계의 산악지대에서 열리는 베르비에 페스티벌, 바그너의 작품만 연주하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라이프치히의 바흐 페스티벌, 영국의 프롬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조건만 허락된다면 매년 여름을 온통 클래식 페스티벌만 찾아다니고 싶다. 이탈리아 야외 오페라 극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페스티벌, 오스트리아의 호수 마을 브레겐츠에서 열리는 브레겐츠 페스티벌 또한 장관이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엄청난 무대장치가 꾸며진 수상무대가 특별한 볼거리다. 해가 넘어가고 달이 떠오르는 시간인 저녁 9시 30분에 호수를 배경 삼아 성대한 막을 올리는 이 축제는 언제나 기다리는 이들로 대만원이다. 미처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했더라도 축제 기간에 브레겐츠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일상을 예술로 바꿔주는 우리의 축제
한국에도 여름밤을 수놓을 멋진 축제들이 있다. 인천을 대표하는 정통 클래식 음악 축제 「제4회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 2021」은 8월 27일(금)부터 10월 31일(일)까지 열린다. 올해 4회를 맞이하는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은 국내외 음악계를 대표하는 저명한 클래식 스타들과 지역 연주자들의 다채로운 공연으로 진행되는데, 일상 속 공간으로 찾아가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 ‘서로 人 클래식’, ‘앙코르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등도 함께 개최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에서 이탈리아 마피아 전담 변호사 빈센조는 집에 오면 편안하게 오페라를 즐기는 일상을 보여준다. 밖에서는 심각한 사안을 다루는 변호사지만 오페라를 듣는 순간 그의 세상은 클래식 메타버스가 된다. 특별한 음악이라 격식을 갖춰야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 뭘 좀 아는 사람들만 듣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클래식이 누군가에겐 일상이다. 우리도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삶.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예술의 목적이다. 예술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음악이 우리의 일상으로 찾아와 매직을 불러일으키는 한여름 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연인과 함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일상에 지쳐 힘을 얻고 싶은 기분이 드는 밤에, 누군가 20살의 나처럼 방황하고 있다면, 뭔가 설렘과 행복의 기운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당신에게 클래식 페스티벌이 필요하다. 잠시 멈춰 서서 클래식의 향기를 느껴볼 일상의 호사를 당신에게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 필자소개

조현영

아트앤소울 예술강의기획 대표, 음악 칼럼니스트
독일 쾰른 국립음대 전문연주자과정 졸업,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최고전문연주자과정 졸업, 16회의 독주회 개최, 대학출강(피아노 전공 실기 및 예술 철학, 교수법 강의)
네이버 오디오 클립 <조현영의 올 어바웃 클래식>제작,연출,진행, 서울시향 SPO <음악과 걷다>칼럼 연재 중, 광주일보 <현영의 클래식, 영화를 만나다>칼럼 연재 중

저서
<클래식은 처음이라>, <오늘의 기분과 매일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엄마의 음악 도시 기행>, <조현영의 피아노 토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