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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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당시 대량생산 되고 있는 페니실린 [사진]세계 2차 대전 당시 대량생산 되고 있는 페니실린

결핵, 공포 시대의 막을 내린 위대한 결단

유럽 인구의 4분의 1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결핵’.1 오늘날에도 연간(2014년 기준) 900만명이 넘는 환자와 150만명의 사망자를 낳는 무서운 질환으로2, 전세계적으로 3월 24일을 ‘결핵의 날’로 지정해 3월 말까지 다양한 예방 및 퇴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결핵이 본격적으로 연구 되기 전인 19세기에는 결핵이 낭만의 질병이자 천재성의 징표로 여겨지기도 했다.3 쇼팽의 아내이자 프랑스 여성작가, 조르드 상드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쇼팽이 ‘영원한 은총으로 기침을 한다’고 말하며 그의 음악적 영감을 결핵에서 찾았으며2, 영국 시인 바이런은 결핵에 걸려 여성들의 관심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4

‘하얀 페스트’라 불리며 공포를 넘어 동경의 대상이었던 결핵은 한 유대인의 발견으로 전기를 맞는다.5 우크라이나 태생 미생물학자인 그의 이름은 ‘셀먼 왁스먼’.6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44년 럿거스 대학교에서 흙 속 박테리아균을 연구하다가 결핵균에 반응하는 항생물질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한다.7,8

당시 왁스먼 박사의 연구를 지원했던 MSD는 FDA로부터 세계 첫 결핵 치료제로 ‘스트렙토마이신’을 허가 받기 위한 자료를 마련하고, 제조시설을 세워 상업적인 발판을 빠르게 마련해갔다.7 하지만 약물의 가치가 입증이 될수록 왁스먼 박사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7

“세상을 바꿀만한 이 소중한 공중보건적 성과가 더 많은 곳에 보급되었으면 좋겠다”

MSD 회장을 맡고 있던 조지 머크는 왁스먼 박사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큰 결단을 내린다.7 MSD가 셀먼 박사의 연구를 지원하는 대가로 얻은 ‘스트렙토마이신’의 특허권을 럿거스 재단에 기부하기로 한 것.7 이로 인해 ‘스트렙토마이신’은 MSD 뿐 아니라 누구나 필요에 의해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7

MSD는 특허권 양도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의료보건 환경이 취약했던 아시아 국가에 약물을 무상 공급했는데, 당시 결핵 창궐로 신음하던 일본에 MSD가 ‘스트렙토마이신’을 무상으로 대량 공급한 일은 여전히 많은 의과학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다.7

오늘날에도 WHO 필수 약물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스트렙토마이신’.7 이후 결핵뿐만 아니라 기존에 치료법이 없었던 많은 박테리아성 질환에도 효과가 확인돼 널리 활용되어 왔다.6,7 셀먼 왁스먼 박사는 약물 개발의 공로로 195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으며, MSD 역시 더 많은 환자들이 신약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의약품 접근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7

레퍼런스
  • Kenrad E. Nelson, Carolyn Williams, Infectious Disease Epidemiology: Theory and Practice.
  • WHO, Global tuberculosis report 2015, 20th edition.
  • BBC News Magazine, The mystery of Chopin's death.
  • Thomas M.Daniel. The history of tuberculosis. Respiratory Medicine (2006) 100, 1862–1870
  • John Frith, History of Tuberculosis (Part 1 – Phthisis, consumption and the White Plague). Journal of Military and Veterans' Health, Volume22, No.2; June 2014
  • Rutgers, Waksman Institute of Microbiology, About Waksman,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