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하면 누구나가 삼(三)백년전의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생각게한다. 서울 동남방으로 한강을 사이에 두고 이(二)십사(四)키로 지점인 이곳은 북한산성 같은 호탕한 맛은 없으나 해발 사(四)백육(六)십미터의 고원지대에 마련된 요색이며 삼(三)국시대의 백제의 서울이 북쪽으로 넓게 퍼진 골짜기에 있었다는 것으로 더욱 우리 마음을 끈다. 지금 폐허로 남은 성벽은 인조(仁祖)때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둘레는 이(二)십리 동서남북의 사(四)문과 십육(六)의 암문(暗門) 아홉 개의 절이 있어 승병(僧兵) 삼(三)백칠(七)십명이 주둔해 있던 당시로는 국내 제일(一)의 산성이었다. 산성내에 산재한 고건물 중에서 정상의 서장대(西將臺)와 동문 옆 장경사(長慶寺) 등이 널리 알려졌고 서장대 서편에 있는 이(李)대통령(大統領) 송수탑(頌壽塔)에서는 한강너머 서울 방면이 보인다.
차편은
(1)경기여객 시발 매일요일 오전 구(九)시 출발 직행뻐스[일(一)시간 삼(三)십문 북문까지 요금 삼(三)백육(六)십환] 또 수시로 복정리[북문까지 육(六)키로]까지 가는 시외뻐스[한시간 삼(三)십분 요금 이(二)백환]
(2) 한국관광(조선호텔 앞)의 관광뻐스 토요일 오후 일(一)시 삼(三)십분 일요일 오전 팔(八)시 삼(三)십분 또 정오출발[당일 돌아옴 일(一)시간 삼(三)십분 북문착 귀로는 남문시발 왕복요금 천삼(三)백환]
▲동아일보 1959.04.22. 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