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보는 세상

2020년 10월호 vol.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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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발명의 계기가 발명품을 만들다
-숭실대학교 신진희



처음 ‘휴대용 점자 입력 장치’ 제품을 구상했을 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 때 당시 나는 발명품을 구상하는 취미가 있었다. 특정 문제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공책에 메모를 하곤 했었는데, 마침 그때 나는 장애인 단체에 봉사를 다니고 있었고, 장애인이 주인공인 웹툰을 접하는 등 장애인과 관련된 발명품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 영어 단어를 외우다 문득,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글을 공부하고 쓰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 뒤로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점자 입력도구들을 알아보았다. 생각보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 쓰는 것을 많이 불편해 한다는 것을 알았고 또, 어떤 장치는 너무 비싸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도에 시력을 잃게 되는 경우에는 더 힘들다고 한다. 이후 이를 해결하는 제품을 구상하고 싶어진 나는 처음에 접했던 점자 입력장치인 ‘점자 타자기’의 형태를 모티브로 삼았다. 그리고 최대한 사용법이 간단하며 가격이 저렴하고, 휴대성이 높은 제품으로 디자인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했다.
제품을 구상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무래도 어느 정도 아이디어의 형태를 잡은 후 제품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단계였다. 주위에 시각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제품을 구상할 때부터 관련 정보를 많이 찾아다녔다. 인터넷을 통해 시각 장애인의 글, 점자 관련 도구에 대한 정보, 점자 책 제작 봉사 후기, 뉴스 등 관련 있는 정보는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 읽으면서 이를 토대로 제품을 보완 및 수정했다. 이 과정만 약 5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들이 걷는 도중 턱이나 모서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제품을 생각했다. 신발 앞에 붙이는 완충제를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전체 신발 길이가 너무 길어져 더 불편하고 외관상 좋지 않을 것 같아 그만 두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정보 중 하나는 종이를 핀으로 눌러 점자를 새길 때, 점자를 새기고 종이를 뒤집어 읽어야 하므로 기존에 알고 있던 점자의 대칭 형태로 점자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배울 때 비장애인들처럼 종이에 글을 쓰면서 익히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또 점자의 원래 형태와 대칭 형태를 모두 파악하고 글을 쓰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워 보였다. ‘내가 점자를 쓴다면 짧은 단어를 쓰는 것도 헷갈릴 것 같은데 긴 문장은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공부가 가장 어려웠던 나는 이런 사실이 너무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 제품을 보완하고 더 많은 노력을 쏟았던 것 같다. 그렇게 수정을 거듭해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런 ‘휴대용 점자 입력 장치’를 준비해 ‘대학창의 발명대회’에 참여했다. 특허청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고 한국발명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대회에서 뜻하지 않게 최고상인 ‘대통령 상’이라는 큰 상을 주신 건 아마도 장애인을 위해 더 많은 제품이 개발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 것 같다.

이 제품을 구상할 때 나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이플러’를 참고했다. 그 이유는 필기구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용하는 스테이플러 제작 방법과 큰 차이가 없도록 구상하면서 가격 부담을 줄일 수 있게 구상했다. 그리고 앞뒤 뒤집어 점자를 새기는 문제를 해결해, 알고 있는 점자 형태만 알면 곧바로 종이에 점자를 새길 수 있도록 구상했고, 종이를 핀으로 누를 때 생기는 단점인 한번 새긴 점자를 수정할 수 없다는 점, 점자가 영구 보존되기 힘들다는 점, 점자를 보존하기 위해 특정 종이에만 점자를 새겨야 한다는 점을 해결했다. 그뿐 아니라 작은 점자를 읽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노년층을 고려해 점자의 크기를 조절하여 종이에 새길 수 있도록 구상했다. 휴대용 점자 입력기가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겠지만 이 제품이 점자 교육 장치, 더 나아가 시각장애인의 필기구로 사용되어 점자를 읽고 쓰는데 기존보다 편리함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다.

현재 나의 할머니께서도 거동이 많이 불편하시다. 기존에 나와 있는 노인들을 위한 이동보조기구는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할 때 오히려 불편하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엔 이동의 제약이 없는 이동 보조기기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이번 발명대회를 통해 내가 만든 아이디어 제품에 특허를 내고 공개할 수 있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앞으로 또 누군가 다른 발명품을 구상할 때 내가 다른 발명품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참고 한 것처럼, 이 ‘휴대용 점자 입력 장치’가 또 다른 발명의 계기가 되어 다른 발명품을 만드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휴대용 점자 입력 장치를 발명하며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마음은 상대방을 생각하는 작은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