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점자, 평면 위에 피워 낸 여섯 개의 꽃
- 김 동 복 (한국점자도서관 관장)
11월 4일은 한글점자의 날이다. 시각장애인이라면 훈맹정음이 무엇인지 다들 알고 있다. 훈맹정음은 교육자 박두성이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시각장애인이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만든 한글점자이다.
점자 창안일은 한글날(훈민정음)보다 국민의 관심과 인지도는 낮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크다. 최근 점자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점자도 한글처럼 법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커졌다.
우리나라 한글점자의 가치와 의미를 살펴볼 때 한글점자를 창안한 사람들의 열정과 정신, 한국점자 규정에 대한 제정과 정비를 살펴보고, 점자법 시행과 한국점자규정 개정에 따른 점자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방향을 제언하고자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문자의 사용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열등하고 소외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1898년 홀 여사가 평양 점자(4점 점자)를 창안했고, 1926년 박두성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훈맹정음(6점 점자)을 창안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도 문자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 후 한글점자는 계속 수정·보완됐고, 수학 점자, 과학 점자, 음악 점자, 컴퓨터 점자 등을 포함한 한국 점자가 고시되고, 점자법까지 제정되며 시각장애인들의 문자 생활에 큰 도움을 주었다.
홀 여사는 1897년 가을, 뉴욕맹학교 웨이트 교장을 만나 뉴욕 점자의 원리를 배워 서울로 돌아와 뉴욕 점자를 조선어에 적용해 4점 점자인 평양 점자를 창안했다. 점자 인쇄기가 도착하기도 전에 점자 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해 1898년 봄, 초학언문 일부를 점역했다. 이는 장판지를 16절지보다 약간 작게 절단해 그 위에 줄을 맞춰 평양 점자를 먼저 연필로 점을 찍어놓고, 그 점 위에 바늘로 찔러 점자책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점자 교과서다.
평양 점자는 서울이 아닌 평양에서 사용되고, 6점 점자가 아닌 4점 점자였으며, 여성 시각장애인들만 가르쳐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게다가 미국인에 의해 창안되었기에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이 쓰기에는 여러 단점이 있었다. 그런데도 평양 점자는 3·2 점자가 창안되기 전까지 약 25년 동안 한글점자로서의 그 소임을 다했다.
1913년 제생원 맹아부가 설립되자 조선총독부는 일본의 훈맹점자를 들여와 제생원 내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것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6점 점자였다. 이는 6점 점자와 4점 점자를 비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박두성 선생은 한글점자를 만들어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을 받고, 평양 점자를 만든 홀 여사에게 한글점자를 6점 점자로 창안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홀 여사가 반대하자 제자들과 함께 한글점자를 창안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26년 11월 4일 한글점자인 훈맹정음을 반포했다.
외국의 점자를 보면 루이 브라유의 알파벳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 점자도 브라유의 알파벳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훈맹정음은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과학적이고, 규칙적이며 배우기 쉽게 만들어졌다. 종합해보면 훈맹정음은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의 자기 존중감을 한껏 높인 점자이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훌륭한 점자 중 하나일 것이다.
훈맹정음이 발표된 후 점자는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박두성 선생과 조선어점자연구위원들은 한글점자를 보급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제생원의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에게도 한글점자를 가르쳐 사용하도록 했다. 박두성은 점자를 보급하기 위해 1926년 8월 서울 갓우물골(현재의 입정동)에 ‘육화사’를 설치하고 서대문우체국에 사서함을 개설해 통신교육을 실시했다. 이때 그는 조선어점자연구위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지침을 내렸다. 첫째, 매월 정기 통신문을 보낸다. 둘째,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셋째, 점자를 모르는 사람에게 점자를 가르친다.
박두성 선생과 조선어점자연구위원들은 한글점자의 통일된 사용을 위해 평양맹아학교에 훈맹정음을 소개했다. 평양맹아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처음에는 훈맹정음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으나, 6점 점자로 돼 있어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평양 점자 대신 훈맹정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임안수 교수는 한글점자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표준 한글 점자를 채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한국점자연구위원회는 시각장애인 교육과 재활 분야에서, 점자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 사람들을 위원으로 위촉해 한글점자, 수학 점자, 과학 점자, 음악 점자, 컴퓨터 점자를 연구하도록 했다.
한국점자연구위원회는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1992년 5월부터 표준 한글점자 규정과 컴퓨터 점자 기호 제정에 착수했다. 1995년 6월에는 개정 한국점자 통일안의 규정에 따라 점자 도서와 잡지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한국점자연구위원회가 창립된 지 9년 만에 표준 한국 점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개정 한국 점자 통일안이 보급된 후에도 일부에서는 문장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한국점자연구위원회는 홍보 부족 때문인 것으로 판단하고, 1995년 8월 세미나를 열어 통일된 점자를 사용할 것을 결의했다.
한국점자연구위원회는 2005년부터 고시를 위한 절차로 한국 점자 규정 개정안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정부 부처와 시각장애인 단체, 시각장애인 복지관, 맹학교, 시각장애인 도서관, 대학교 등에 보내 의견을 수렴했다. 수렴된 의견은 한국점자연구위원회 위원과 시각장애 관련 전문가 35명으로 심의회를 구성해 검토했다. 여러 차례 수정된 한국 점자 규정 개정안을 2006년 6월 9일 문화관광부 고시 제2006-39호로 개정 한국 점자 규정을 고시했다. 그 후 한국 점자 규정을 묵자와 점자로 출판해 관련 정부부처, 시각장애인 단체, 시각장애인 도서관, 맹학교 등에 배포했다.
일제강점기 그 엄혹한 시기에, 살벌한 감시를 피해서 우리말 점자를 연구하고 만든 훈맹정음 유물들이 문화재로 등록 예정이다.
우리말 말살 정책이 펼쳐지던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훈맹정음은 한글사랑의 정신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세로 3개, 가로 2개로 구성된 점을 조합해 자음과 모음을 표현하도록 하여 과학적인 문자, 역사 및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되게 되었다.
당시 시각장애인은 제생원 맹아부, 지금의 국립서울맹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교육을 받으려면 일본어점자로 어쩔 수 없이 익혀야했다. 박두성 선생이 ‘조선인은 조선어를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만들었다.
문화재 등록으로 예고되는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은 훈맹정음 사용법 원고, 제작과정 일지, 제판기, 점자인쇄기(롤러), 점자타자기 등 한글점자의 제작·보급을 위한 기록 및 기구 등 8건 48점이다. 또한 ‘한글점자 훈맹정음 점자표 및 해설 원고’는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한글점자의 유래’ 초고본 등으로, 한글점자의 유래와 작성원리, 구조 및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많은 유물들이 소실되었으나 다행히 이 육필 원고본 등이 남아있었다. 이렇게 귀중한 유물들이 이제야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번 문화재 등록을 계기로 한글점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6년 점자법이 제정되었지만 점자 사용 환경이 딱히 개선되었다는 건 못 느끼겠다.
《점자법》 제4조에는 ‘점자는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며, 일반 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공공기관 등은 입법·사법·행정·교육·사회 문화적으로 점자의 사용을 차별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 등에서는 점자문서의 사용을 여러 핑계로 거부하고, 학습 자료의 권수 제한, 점자 선거 공보물의 면수 제한, 의약품 등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점자사용의 차별은 해소되고 있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한글점자 사용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체계적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점자 규정이 개정·적용되고, 이에 한글점자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홀 여사와 박두성 선생의 한글점자 창안을 위한 열정과 시각장애인의 사랑에 대한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승해야 한다. ‘점자역사관’ 및 ‘점자박물관’ 등을 건립해 한글점자에 대한 역사와 변천사를 널리 알리고 한글점자에 대한 미래를 조명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글점자의 꾸준한 연구와 통신교육을 통해 점자 지도사를 양성하는 등 체계적인 점자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해야 할 것이다.
셋째, 홀 여사는 연필로 점자를 찍어놓고 바늘로 찔러 점자 교과서를 만들고, 박두성 선생은 많은 점자 도서를 직접 제작해 보급했다. 국립장애인도서관과 점자도서관(점자출판시설)들이 협력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고품질의 대체 자료를 제작해야 할 것이다.
넷째, 임안수 교수를 비롯한 한국점자연구위원회의 수고와 노력으로 점자 통일안이 제정되고 시대에 맞는 개정을 거듭하면서 한글점자가 발전돼 왔다. 점자법의 제정 취지와 목적에 따라 점자 관련 정책, 점자 출판시설, 점자 교육과정, 점자 문화 등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점자 전문가들의 의지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섯째, 점자 사용자인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점자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 한국 점자 규정을 바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개정된 점자 규정을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알리고, 점자 도서 및 점자 인쇄물 등을 활용해 궁극적으로는 점자 문화 확산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박두성 선생과 제자들이 한글점자의 통일을 위해 평양의 시각장애인들에게 훈맹정음을 보급했듯이 우리도 통일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남북한 점자 비교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둘째, 한글점자의 꾸준한 연구와 통신교육을 통해 점자 지도사를 양성하는 등 체계적인 점자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해야 할 것이다.
셋째, 홀 여사는 연필로 점자를 찍어놓고 바늘로 찔러 점자 교과서를 만들고, 박두성 선생은 많은 점자 도서를 직접 제작해 보급했다. 국립장애인도서관과 점자도서관(점자출판시설)들이 협력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고품질의 대체 자료를 제작해야 할 것이다.
넷째, 임안수 교수를 비롯한 한국점자연구위원회의 수고와 노력으로 점자 통일안이 제정되고 시대에 맞는 개정을 거듭하면서 한글점자가 발전돼 왔다. 점자법의 제정 취지와 목적에 따라 점자 관련 정책, 점자 출판시설, 점자 교육과정, 점자 문화 등의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점자 전문가들의 의지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다섯째, 점자 사용자인 시각장애인들이 한글점자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 한국 점자 규정을 바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개정된 점자 규정을 여러 경로를 통해 서로 알리고, 점자 도서 및 점자 인쇄물 등을 활용해 궁극적으로는 점자 문화 확산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박두성 선생과 제자들이 한글점자의 통일을 위해 평양의 시각장애인들에게 훈맹정음을 보급했듯이 우리도 통일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남북한 점자 비교 연구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