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Insights

반도체 업종의 M&A에 대한 단상.
로미오와 줄리엣은 결혼할 수 있을까

하나금융투자
김경민 애널리스트
반도체 프로세서 시장에서 Intel과 Nvidia가 자웅(雌雄)을 겨루고 있다. 양사 데이터 센터 부문 매출의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Intel의 Data Center Group 사업 매출은 2019년 2분기 기준으로 Nvidia의 Datacenter 사업 매출의 7.6배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20년 2분기 기준으로 양사의 매출 격차는 4.1배까지 감소했다.

Nvidia의 Datacenter 부문 매출은 Intel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상 최초로 주력 사업을 상회하는 매출을 시현했다. 가장 최근 분기(5~7월) 기준으로 Nvidia의 Datacenter 부문 매출은 17.5억 달러를 기록해 모태사업에 해당되는 Gaming 부문 매출 16.5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이와 같은 성과를 이끌어낸 원인 중 하나는 Nvidia가 미중 무역갈등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Datacenter 부문 실적에 기여할 만한 기업을 합병했기 때문이다.

Nvidia는 원래 M&A 업계의 주전 선수가 아니었다. Nvidia와 Intel 중에 M&A에 주력했던 곳은 Intel이다. Nvidia의 경우, 가상화폐 채굴 영향으로 전방산업 수요에 변동성이 커지기 전까지 연구개발에 주력했다. FY 2016년(2015년 2월~2016년 1월)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6.5%였다. 경쟁사 Intel의 21.3%이나 AMD의 23.3%보다 높았다. FY 2014년(2013년 2월~2014년 1월)에 Nvidia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무려 32.3%를 기록했던 적도 있다.

그러던 Nvidia가 Datacenter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Mellanox 인수를 시도한다고 알려졌을 때 증시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었다. 2019년 3월, Mellanox 인수 시도 뉴스가 보도된 날, 인수기업 Nvidia의 주가는 전일 대비 12.7% 상승했다. 이와 같은 주가 흐름은 특이한 것으로 판단된다. M&A 시도가 알려지고 나면 인수기업의 주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 부담과 M&A 실패 시의 리스크 때문이다. 뉴스 보도 첫날, Nvidia의 주가가 10% 이상 상승했던 이유는 Mellanox를 인수하면 Nvidia의 데이터 센터 사업부와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점 때문이다.

이후 각국 규제당국의 승인은 지연됐다. 2019년 연내 마무리하는 것이 Nvidia의 목표였는데 당시의 컨센서스는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되어야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미국 기업들 간의 결합이므로 중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기는 단기적으로 어렵다.'라는 것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중 무역분쟁이 진행 중이었으므로 중국 규제당국이 승인을 검토하기는커녕, 검토조차 원활하게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을 때까지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조짐이 나타나면 Nvidia의 주가는 하락했다. 결국 중국 규제당국의 승인은 2019년 4월에 이루어졌으니, Nvidia의 입장에서 13개월 만에 승리의 면류관(冕旒冠)을 쓴 셈이다.

Nvidia처럼 M&A 효과가 실적에 바로 반영되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Nvidia와 달리 아직 규제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2019년 7월, 미국의 반도체 장비 공급사 Applied Materials는 일본의 반도체 장비 공급사 Kokusai Electric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양사는 8월 말 기준으로 아직 중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무역분쟁 이전이나 지금이나 글로벌 기업 간의 인수합병은 쉽지 않다. 미중 무역갈등 이전에도 각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받기는 어려웠다. 반도체 업종의 성공적 M&A 사례 중에 대만 MediaTek(미디어텍)의 MStar(엠스타) 인수가 있다. 인수 당시, 미디어텍은 휴대폰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시스템 온 칩(SoC) 공급사였다. 엠스타는 Digital TV용 시스템 온 칩 1위 공급사였다. 미디어텍과 엠스타의 기업결합은 한국에서도 이슈화됐다. 미디어텍이 엠스타처럼 Digital TV용 시스템 온 칩을 설계하고 있었으며, 양사가 이미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규제당국에서 문제 삼았던 것은 1위 및 2위 공급사의 기업결합 이후 Digital TV용 시스템 온 칩 가격의 인상 가능성이었다.

결국 한국 규제당국에서는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주요 내용은 '향후 3년간 신제품 출시 후 3분기(9개월)가 도래하는 시점에 칩 가격을 인하한다. 이와 같이 인하된 가격을 TV 세트사의 구매 종료 시까지 유지한다'라는 조건이다. 결론은 깔끔하다. 그러나 결론이 도출될 때까지 시간이 걸렸다. 미디어텍과 엠스타의 합병 시도는 2012년 6월에 처음으로 보도됐다. 한국 규제당국의 승인을 획득한 이후, 모회사가 된 미디어텍과 자회사가 된 엠스타가 정식 합병을 마무리한 것은 2019년 1월이다.

반도체 업종의 인수합병에서 성공담과 실패담을 두루두루 들여다보면 마치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수합병에 실패했거나 특정 사업부 인수 후에 핵심 부서 인원들의 퇴직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은 실패담을 여기저기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수합병에 성공한 기업들만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인수합병 실패 사례는 성공사례 못지않게 많다. 앞서 언급한 미국의 반도체 장비 공급사 Applied Materials는 2013년 9월에 Tokyo Electron과의 M&A를 발표했다. 양사의 업계 점유율은 당시 기준으로 각각 1위와 3위였다. 인수합병 시도는 2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양사의 장비를 이용하는 고객사들은 반도체 장비 공급사의 지배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규제당국의 반대도 심했다. 양사의 합병 이후 법인세 유입이 감소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5G 수혜주로 꼽히는 퀄컴도 인수합병에 실패한 적이 있다. 퀄컴은 네덜란드의 자동차 반도체 공급사 NXP를 440억 달러에 인수합병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 규제당국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20억 달러의 해약 수수료를 지불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2018년 7월에 발생했던 사건이다. 퀄컴의 해약 수수료 지불 사건은 미중 무역분쟁의 전초전(前哨戰)으로 꼽힌다. 미중 무역분쟁이 반도체 패권전쟁의 양상을 띄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도 있는 복잡한 환경에서 반도체 업종 내의 M&A는 현재진행형이다. 소프트뱅크가 2016년에 234억 유로에 인수한 Arm Holdings는 과연 어디로 매각될 것인가?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오른 Nvidia가 새롭게 risk taking을 할 것인가? Nvidia는 어렵게 인수한 Mellanox와의 시너지를 톡톡히 누리고 있으며 분기 매출 단위는 30억 달러대에서 40억 달러대로 레벨업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다시 한번 대규모 빅딜을 추진하려고 할까?

1494년 6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 대륙 외의 지역에 대한 영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토르데시야스에서 기하학적 영토 분할 조약을 체결했던 것처럼, 반도체 업종의 M&A는 인수기업과 피인수 기업의 시장점유율에 큰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규제당국의 승인을 쉽사리 받아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베로나의 10대 커플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이 애석한 결말로 끝나지 않고 '둘이 결혼한 뒤에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이야기가 되려면 양가 부모님뿐만 아니라 베로나의 저명한 가문들의 암묵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로 마무리된 M&A 사례는 일본의 Toshiba Memory Corporation을 다자간 컨소시엄이 인수한 것이다. 2017년 10월, 모회사 Toshiba는 메모리 사업부를 미국 사모펀드(Bain Capital)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합의한다. 컨소시엄에는 SK하이닉스, 일본 산업혁신기구, Hoya, Apple, Dell Technologies, Seagate, Kingston Technology 등과 금융기관이 참여했다. 모회사 Toshiba의 지분율은 100%에서 40.2%까지 감소했다.

소프트뱅크의 Arm Holdings 매각설이 2020년 7월에 처음 보도됐을 때 애널리스트로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한국 기업이 Arm Holdings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한국 반도체 업종에서 대규모 M&A가 자주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빅딜이 성사되는 과정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부모님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친구들로부터 허락을 받는 과정과 유사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부모님, 그리고 양가의 화합을 정치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베로나의 영주는 과연 둘의 결혼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現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
前 대신증권, KB증권, HSBC은행
2020년 상반기 한경 베스트 애널리스트(반도체) 1위
2019년 매경 베스트 애널리스트(반도체)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