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와 비논리
"당연하지만 인간의 소화기계는 한 줄로 되어 있습니다. 입부터 항문까지는 곁가지라고는 없는 외길로 음식물이 통과하게 됩니다. 물리적으로 보면, 소화관은 소화능력이 있는 벽으로 둘러쌓인 공간에 불과합니다. 공기가 찬 긴 동굴을 생각하면 되지요. 그러므로, 만약 인간이 소화능력을 전부 상실하면, 입으로 섭취한 음식물은 그대로 항문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는 내가 학창시절에 들었던 몹시 흥미로웠던 강의 내용이다. 일단, 과학적인 내용만을 제시하고 있는 강의였지만, 쉽게 납득하기 힘든 내용이 뒤에 있다. 인간의 장이 한 줄이라는 것은 당연하고 논리적인 사실이지만, 내가 어제 시켜먹은 치킨이 튀김옷까지 고스란히 항문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엄연히 과학의 모든 것처럼 제시되고 있었는데, 자, 그렇다면 이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 볼까.
직장암 환자 A씨는 내일 수술이 잡혀 있습니다. 거의 완전 폐쇄에 가까운 크기라서 급하게 수술이 잡혀 있었지요. A씨는 입원하여 내일 수술을 기다립니다. 직장암 수술 환자는 수술 전날 장을 비우는 전 처치를 받습니다. 맛도 없이 밋밋한 설사약 4L 를 억지로 마시는 거지요. 하지만 장처치를 받지 말아야 할 사람도 분명히 있지요. 그러나 하필 A를 맡은 가정의학과 파견 주치의 B는 흔쾌히 A에게 기여코 4L를 다 마시게 해 버리고 맙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건 바로 B가 간호사의 급한 전화를 받는 겁니다. "선생님 A씨가 지금 대변을 토하고 있어요!!!"
장은 한 줄입니다. 이건 논리적이지요. 장은 그래서 빠져 나갈 구석이 없습니다. 이것도 논리적이지요. 그래서 직장이 막혔는데 그 앞에 4L의 액체가 고인다면 역류해야만 합니다. 아주 논리적이지요.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직장과 대장에 들어 있던 똥이 쓰나미 같은 물살을 타고 입으로 나오는 것도 아주 과학적이지요. 하지만, B와 의료진이 달려가서 본 장면은 변기에 어제 먹은 초밥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일처럼 전혀 논리적이지가 않았어요. 입으로 먹지도 않은 대변이 폭풍우처럼 나오는 신기하고도 무지무지 불쾌한 경험을 하고 있는 A씨의 생각도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러니깐, 입으로 대변이 나오는 광경은 과학적이라지만,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인 겁니다. 그 사람들이 목도한 똥을 토하는 입이 그 과학과 논리의 아슬아슬한 접점에 있었달까요. 이토록 의학은 과학이지만 인문학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