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21
삼정KPMG Deal Advisory5 스타트업지원센터 김홍걸 차장
벤처기업,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탈출기
창업 3~5년차를 접어드는 다수의 벤처 기업들은 본격적 Business Model 구축 및 확장에 필요한 자본규모에 비해 운용자금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직면한다. 벤처업계에서는 이러한 성장단계를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도 일컫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0년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이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29.2%에 그치며 이는 OECD 주요국의 창업 5년차 평균 생존율 40.9%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창업벤처 정책인식 실태조사’에 의하면, 초기 창업자들이 ‘죽음의 계곡’ 탈출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자금조달 및 운용(56%)’을 뽑았다. 다시 말해, 시기적절한 자금수혈 없이 벤처기업들에게 생존이란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구체적인 사업 모델이 구상되었다 하더라도, 자금부족으로 사업 실행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수익창출로 이어질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2014년, 설립 3년차였던 쿠팡도 죽음의 계곡의 예외는 아니였다. 당시 CJ오쇼핑(現CJ홈쇼핑), GS홈쇼핑과 같은 대형 e커머스 업체들은 대출혈 경쟁에 박차를 가하며, 자금난으로 시달리던 쿠팡은 기업의 영속성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로켓배송서비스와 업계 최초 실시한 365일 고객 서비스 혁신을 지렛대 삼아 2015년 6월 일본의 세계 최대 다국적 펀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10억달러(1.1조원) 규모의 투자금 유치에 성공하며 상황을 단숨에 역전시켰다.
대규모 해외 자본을 바탕으로 쿠팡은 물류센터 확충, 차별화된 고객 만족도 증진 전략 추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그 결과 온라인 소셜커머스 업체들뿐 아니라 대형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체들도 차례차례 격상시켰다. 올해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까지 성공한 쿠팡은 4조원의 투자금을 확보하며 글로벌 e커머스 시장의 Key Player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쿠팡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벤처기업들의 성장은 대기업의 대규모 자본 수혈과 직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국내 벤처 환경은 아직 녹록지 않다. 금산분리의 원칙하에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이하 CVC)의 설립과 운용에는 법적 제한이 많아 대기업으로부터 벤처업계로의 원활한 자금투입이 이루어지기에는 어려운 환경을 갖고있다. 2020년 7월, 정부가 대기업들의 CVC 보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했지만, 제도의 실효성이 낮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orporate Venture Capital, CVC)이란?
CVC는 대기업이 출자한 벤처캐피탈을 뜻하며, 일반 벤처캐피탈(VC)은 재무수익 추구가 주목적이나, CVC는 투자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시너지 모색, 외부 기술·인력 탐색 및 확보, 신사업 진출 등의 전략적 목적도 함께 추구한다는 점에서 VC와 차이가 있다. 주로 해외 주요 기업의 경우 대기업의 풍부한 자본력, 인력, 기술 등의 자원을 바탕으로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재무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벤처링의 일환으로 활용하고 있다.
해외 글로벌 CVC들의 행보
기업들의 CVC 설립 및 운영 환경이 비교적 자유로운 글로벌 투자시장에서는 기업벤처링이 그 어느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CVC를 통한 벤처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벤처산업에서 또한 대기업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자금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2010년대 초, 금융수익 회수 목적이 대다수 CVC들의 설립 배경이 되었지만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투자 수익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목적 외에도 모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외부자원 확보, 신시장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써 CVC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이다.
· 글로벌 CVC 최근 2년간 진행한 총 Deal 건수
출처 : 삼정KPMG 경제연구원
미국의 구글, 중국의 알리바바, 인도의 베넷 콜먼 앤 컴퍼니(Bennett Coleman & Company)와 같이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투자 분야가 다른 여러 개의 CVC를 운영하기 위해 CVC 지주회사 성격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글로벌 기업들은 CVC를 통해 초기 단계의 벤처기업들에 분산 투자해 모기업과의 시너지 기회가 포착되면 직접 인수를 하거나 지분 매입에 나서기도 한다. 해외 글로벌 CVC들의 투자 선호 분야와 CVC 모기업들의 업종이 흡사한 이유도 이러한 투자 전략 때문이다.
· 글로벌 CVC 투자 관련 주요 통계 ◆ 평균값 ● 중앙값
자료: 삼정KPMG 경제연구원
국내 CVC 시장 생태계
국내 일반 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법적으로 제한된 만큼, 일부 기업들은 해외(주로 미국)에 CVC를 설립하여 투자활동을 전개하는 사례들도 존재한다. 지난 3월, 넥센타이어는 국내 타이어 업계 최초로 미국 실리콘 밸리 현지에 CVC 법인 ‘Next Century’를 출범해 벤처기업들의 신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CVC의 활발한 투자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법적 규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대기업들의 위험 회피적 투자방식은 투자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고 투자 회수 기간이 긴 벤처기업과 상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국내 대기업이 CVC를 설립하더라도 계열사들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지분구조는 공동 자금 출자에 난항을 불러일으키며, 투자심사역들이 독립적 판단으로 벤처기업을 발굴하는데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
위 저해요인들을 뒤로하고, 국내 대기업들은 CVC 추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와 함께 신사업 기회 포착을 목적으로 다수의 국내 대기업들은 합법적 CVC 설립 절차를 구체화하고 있으며 모기업과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전략적 투자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벤처업계 인력을 영입하거나 기업 내부 투자팀이 CVC 업무를 도맡아 추진하기도 한다. 자본 시장 전문 미디어 업체 ‘더벨’에 의하면, 올해 2월 CJ제일제당이 식품사업부문의 전략기획담당 아래 벤처투자 담당팀을 결성해 유관업종 스타트업 발굴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롯데는 지난달 그룹의 CVC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사명을 ‘롯데벤처스’로 바꾸며 비대면과 Mobility 분야에서의 스타트업 발굴에 집중하기 위해 172억원 규모의 펀드를 유치기도 했다.
· 국내 기업 중 해외에 CVC를 설립한 기업
모기업 | CVC | 내용 |
---|---|---|
삼성전자 | 삼성넥스트 (Samsung NEXT) |
■ 삼성전자가 2013년 발족한 삼성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를 2017년 삼성넥스트로 리브랜딩 ■ 실리콘밸리, 뉴욕,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투자 |
삼성전자 | 삼성카탈리스트펀드 (Samsung Catalyst Fund) |
■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산하 투자 조직 ■ AI, 딥 테크 인프라, 데이터 플랫폼 분야를 중심으로 여러 단계에 투자 ■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서울, 이스라엘 텔아비브,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에 사무실을 두고 있음 |
LG | LG테크놀로지벤처스 (LG Technology Ventures) |
■ 2018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CVC를 설립하고 현재 4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 ■ AI, 모빌리티, 생명과학, 차세대 디스플레이, 모바일, 5G 등의 분야에 투자 ■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발굴에 집중하며 모기업과 전략적 협력 추구 |
현대자동차 | 현대 크래들 (Hyundai Cradle) |
■ 2017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CVC를 설립하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독일 베를린, ■ 모빌리티 서비스, 스마트시티, 환경 기술 등의 분야에 중점적으로 투자 |
보령제약 | 하얀헬스네트웍스 (Hayan Health Networks) |
■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캠브리지에 CVC 조직을 설립했으며, 5,00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음 ■ 혁신적인 헬스케어, 바이오테크 기업에 투자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강화하고자 함 |
SK텔레콤 | SK텔레콤벤처스 (SK Telecom Ventures) |
■ 2008년 SK텔레콤 미국 법인(SK Telecom Americas)에 설립된 CVC로 초기와 ■ 모바일 플랫폼, 클라우드, IT, 데이터 센터, loT, 센서 등 신기술 분야에 투자 |
자료: 삼정KPMG 경제연구원
· 국내 기업 중 해외에 CVC를 설립한 기업
구분 | 기업집단 | CVC기업 | CVC유형 | |
---|---|---|---|---|
지주회사 | 일반지주(4) | 롯데 | 롯데액셀러레이터 | 신기사 |
코오롱 | 코오롱인베스트먼트 | 창투사 | ||
CJ |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 | 창투사 | ||
IMM 인베스트먼트 | 아이엠엠인베스트먼트 | 창투사 | ||
금융지주(2) | 농협 | NH벤처투자 | 신기사 | |
한국투자금융 | 한국투자파트너스 | 창투사 | ||
지주회사 | 미래에셋 | 미래에셋캐피탈 | 신기사 | |
미래에셋벤처투자 | 창투사 | |||
삼성 | 삼성벤처투자 | 신기사 | ||
KT | KT인베스트먼트 | 신기사 | ||
호반건설 | 코너스톤투자파트너스 | 신기사 | ||
다우키움 | 키움캐피탈 | 신기사 | ||
키움인베스트먼트 | 창투사 | |||
포스코 | 포스코기술투자 | 신기사 | ||
두산 | 네오플럭스 | 창투사 | ||
네이버 | 스프링캠프 | 창투사 | ||
카카오 | 카카오벤처스 | 창투사 |
자료: 삼정KPMG 경제연구원
정부의 규제완화: 국내 CVC 생태계의 변곡점이 될 것인가?
올해 6월 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집단국 주관으로 국내 지주회사 임원들과 벤처업계 주요 인사들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서는 국내 지주회사의 CVC 보유 제도개선 사항들이 공유되었으며, 지주회사와 벤처업계 주요 인물들의 건의사항이 접수되었다. 벤처지주회사 제도개선 주요내용으로는 벤처지주회사의 자산총액 요건 완화, 투자 제한 완화, 자회사 지분율 요건 완화 및 대기업 집단 편입 유예기간 확대 등의 개선사항이 포함되었다.
‘21년 12월 30일부터 시행 예정인 개선 조항들은 대기업들의 벤처투자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마련되었지만, 국내 CVC 시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앞서 열거된 국내 CVC 투자의 저해요인 제거와 대기업으로부터의 원활한 대규모 자금투입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기업들의 적극적 투자 활동이 필요할 것이다.
결론 및 시사점
현재 국내 CVC에 대한 규제 완화의 흐름은 대기업의 풍부한 자금력으로 벤처투자를 촉진하며, 벤처기업의 스케일업, IPO 외 회수 채널의 다양화, 대기업에 의한 인수합병 등 향후 벤처 생태계가 양적·질적으로 성장하는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성장의 고착화와 급변하는 외부 사업환경 변화로 대기업 역시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기회 발굴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봤듯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방안으로 기업벤처링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아직 국내의 경우 일반지주회사의 CVC 허용은 타인 자본을 통한 지배력 확대, 총수일가 사익 편취 등 부작용 차단을 위한 안전장치가 도입되어 상당한 제약이 있다. 이에 따라 국내 CVC 투자의 저해요인 제거 및 대기업으로부터 벤처산업계로 원활한 대규모 자금투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실행 필요하다. 앞으로 다양한 형태의 CVC 운영방안을 포함한 일반 VC에 대한 LP 투자, 엑셀러레이팅(스타트업 인큐베이팅) 등 다양한 방식의 기업벤처링을 통해 대기업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다양한 자본흐름이 가능한 마중물의 역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