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던 2013년 여름, 저는 미국 보스턴으로 2년간의 해외 연수를 떠났습니다. 당시 서울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던 때였지만, 텅 빈 아파트 바닥에서 맞이했던 보스턴의 첫 밤은 이민가방에서 꺼낸 홑이불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도 춥고 길었습니다. 정착에 필요한 준비들이 하나둘씩 끝나고 슬슬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될 즈음엔 이미 아름다운 계절은 지나고 기나 긴 보스턴의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지요.
늦은 나이에 떠나는 연수인데다 난생 처음 해보는 microRNA와 관련된 기초 연구를 하려다보니 연수 갈 곳을 정하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운좋게도 서울대 이해영 교수의 도움으로 때마침 심장학회 초청 연자로 오게 된 Brigham and Women’s Hospital의 Dr. Stephen Chan을 소개 받아 심장학회장에서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당시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저의 서툰 영어에도 해외연수 신청마감 2주일을 앞둔 절박한 심정이 묻어났었는지 극적으로 마감을 몇 일 앞두고 수락 이메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Dr. Chan은 주로 폐동맥 고혈압의 병인과 관련하여 hypoxia와 관련된 microRNA의 역할을 연구하는 아주 젊고 활기찬 심장내과 의사이자 연구자였습니다. 이 분 역시 이 분야의 대가였던 Loscalzo Lab에서 PI로 독립한지 채 3년이 지나지 않은터라 모든 연구원 및 포닥들과 매일 만나다시피하며 연구들을 이끌어가고 있었고 기초 실험에 문외한이었던 저를 배려하여 선임 연구원을 1:1로 연결시켜 기초부터 하나하나 지도해 주었습니다. 처음 몇 달간은 microRNA 분석과 관련된 실험 기법들을 배웠고 차차 제 연구를 계획하여 실험을 진행하고, 다른 연구자들의 실험을 도와 함께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주로 circulating microRNA와 exosomal microRNA의 분석에 관한 연구들에 참여하였습니다.
2년이라는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처음 실험을 배우기 시작하여 기초부터 익혀야 했던 제게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기에 늘 바쁘게 지내려 노력을 했습니다. 훗날 Dr. Chan이 얘기하길, 경험 없는 외국의 임상의사를 포닥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주변의 만류도 많았고, 본인도 내심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었다고 하더군요. 아닌게 아니라 제가 온 이후에 몇 명의 포닥을 추가로 선발하기 위한 인터뷰에 여러번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살벌할 정도로 엄격하고 꼼꼼하게 심사를 하는 것을 보고 제가 얻은 기회가 참 소중한 기회였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도착해서 낯설고 막막하기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2년의 연수 기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어수선했던 귀국 전 몇달의 기억을 뒤로 한 채 지난 7월 귀국하여 다시 예전의 한국 생활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연수 기간은 학문적인 성과를 떠나서도 병원이라는 보호막과 울타리를 벗어난 낯선 곳에서 제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연수를 마치고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는 요즘, 연수를 시작할 때 못지않은 또다른 생경함과 중압감이 엄습해 옴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때처럼 이 도전들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겠지요.
좋은 연수 주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권혁문 교수님과 황기철 박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훌륭한 PI를 만날 수 있게 해준 서울대 이해영 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지난 2년동안 늘어난 외래 환자와 당직 횟수를 감수하며 연수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여러 심장내과 교수님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연수를 떠날 때는 네 식구였는데 돌아올 때는 다섯 식구가 되었네요. 늘 함께했던 소중한 가족들 덕분에 연수 생활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