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KSIC / 중동에서의 3년간

People in KSIC

중동에서의 3년간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고충원

영어 격언에 ‘You can’t teach an old dog new tricks’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재간을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고 오래된 습관을 고치거나 나이들어서 새 기술을 익히는 것은 어렵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실 중년에 이르면 대부분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자리에서 앞이 보이는 삶을 살다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마침 기회가 되어서 50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에서의 기반이나 인연을 뒤로하고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국에 3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와 지난 3월부터 춘천성심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늙은 개가 운이 좋아서 새 기술을 익혔다고 할까요?



아랍에미리트연합(United Arab Emirates, UAE)는 1971년 12월 2일 영국에서 독립한 7개 토후국들의 연합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토후국들의 내부적으로는 왕정을 유지하고 있고 관례적으로 아부다비의 토후(Emirate=ruler)가 대통령, 두바이의 토후가 총리직을 맡는다는 점에서 다른 여타 국가들과는 사회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1980년에 국교를 수립하였습니다. 국토와 석유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부다비가 수장 국가로 다른 토후국들을 이끌어나가고 있고 다른 소 토후국들은 두바이를 제외하면 경제사회적으로 많이 낙후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방을 발전시키기 위한 중앙정책의 하나로서 UAE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Ras al-Khaimah에 국제수준의 병원을 건립하기로 결정이 되었고 대통령실(Ministry of Presidential Affair)산하에 병원, Sheikh Khalifa Specialty Hospital(SKSH)이 세워집니다. (이 대통령실 장관이 우리가 잘 아는 만수르로 현 대통령의 막내동생입니다.) 병원이 세워지면서 운영주체를 선정하기 위한 국제입찰 끝에 서울대가 선정되었고 저는 마침 연이 닿게 되어서 2015년 1월에 UAE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가 운영을 시작한 것은 2014년 8월이었지만 여러가지 준비가 미비하여 12월에 겨우 임시 개원을 할 수 있었기에 제가 합류하였을 때는 매일 새로운 일과 경험을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환자를 보는 방법부터 직원들과의 의사소통방법도 새로웠고, 한국이라면 당연스러운 검사나 시술도 생각지 못한 이유로 안되기도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 차츰 적응해 나가고 문제의 해결을 찾아가면서 일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병원 소개를 조금 더 하자면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이고 250명 정도가 입원 가능한 규모이나 인력문제로 반 정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환자실은 모두 1인실로 되어 있고 병동도 거의 1인실로 운영되었으며 4층에는 VIP를 위한 진료실과 입원실이 별도로 있습니다. 간호인력도 한국보다는 더 많은 인원이 담당하며 인도, 요르단, 필리핀 등 다국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영어로 소통하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심장내과는 3명의 한국인 consultant가 근무하고 나중에 2명의 specialist가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스페셜리스트는 전공의와 전임의의 역할을 하고 그 아래에 general practitioner가 있어서 일을 보조하는 시스템입니다. 지금은 인력이 보충되어 달라졌지만 초기에는 돌아가면서 병원 전체당직도 하고 거의 매일 회의를 하면서 병원의 모습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UAE의 경우 국민에게 국가에서 무료로 의료비를 지원하지만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은 응급을 제외하고는 사보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SKSH는 신생병원에다가 의뢰환자만을 받아서 심혈관중재술의 경우 첫 해는 100명에서 PCI를 하였습니다. 다음 해부터는 National Ambulance Service와 협력하여 지역의 응급 ACS환자를 담당하게 되어 140명 이상의 PCI를 하였고, 지역의사 및 병원과 협력을 강화하여 작년에는 200명을 넘기게 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질적인 면에서도 STEMI환자의 경우 대부분 60분 이내에 시술을 하여 국제적인 기준을 충족시키는 우수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많이 참다가 병원에 내원하여 시기를 놓치는 안타까운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병원의 특성상 응급환자의 비중이 반을 차지하여 3명이 돌아가는 당직이 조금 부담이 되었지만 그 밖의 분야에서 진료의 스트레스는 한국보다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심장내과의 서비스로는 그 외 약간의 structural heart disease와 박동기 시술을 시행하였고 대동맥과 peripheral intervention도 시행하여, TAVI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심혈관중재술을 제공하는 지역 유일의 병원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장을 바탕으로 지역 의료계에서도 인정을 받아, 많은 지역학회나 집담회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UAE에서의 생활환경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여름 6개월 동안은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있지만 나머지 계절은 쾌적하고 한국의 봄이나 가을날씨같은 환경이어서 야외활동에도 적합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병원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바닷가로 마치 리조트와 같은 환경입니다. 물론 이슬람이 국교라서 생활에 약간의 제약은 있지만 제한된 지역에서는 음주도 가능하고, 두바이와는 달리 술 구입도 자유로운 편입니다. 한국식자재는 RAK과 두바이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중동지역은 물론 세계각국의 음식도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신선한 해산물은 있어도 한국 같은 횟집은 없어서 어시장에서 생선을 사다 직접 해먹어야 하는 불편은 좀 있었네요.




한국보다 월등한 급여와 연간 30일간의 휴가로 여유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점도 무척 좋았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경우 유럽도 7시간 이내이고 한국에서는 좀처럼 가기 힘든 중근동의 국가들, 멀리는 아프리카와 인도양의 국가들도 맘만 먹으면 쉽게 여행이 가능한 것도 큰 매력이었습니다. 저도 가족과 자주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흔치않은 좋은 경험을 한 생활을 한 3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이 되어서는 심장내과는 급성장을 보이며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었으나 경영진과의 마찰로, 계약이 만료되는 2018년 1월말로 사직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의 홍경순 학장님과 최현희 과장님이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3월부터 이 곳 춘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