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비주얼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낯설음에 두려움을 가진다. 알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기에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면 걱정과 무서움이 앞서 선뜻 나서기 힘든 것이다. 물론 호기심이 넘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찾아 나서고 그 속에서 몰아치는 위험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으나, 현대사회만큼은 다수의 위험기피자들과 위험중립자, 소수의 위험애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살 무렵, 대학 신입생인 나 또한 위험애호가가 될 수는 없었다. 사실 내가 겪어온 중고등학교 시절엔 ‘실망’은 있었을지 모르나, ‘실패’는 없었다. 늘 남들이 설정해준 기준과 나에게 걸어온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고 스스로 이뤄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실망하고, 다시 원하는 것들을 성취해나가는 과정이 삶 그 자체였다. 때문에 10대로서 겪었을 법한 ‘실패’는 현재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20살첫 학기, 내 나름대로는 자신감에 가득 차 부푼 기대를 안고 수업에 들어서곤 했다. 당연히 나라면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배우고 다양한 과제를 수행해나갔다. 그렇게 2달쯤 지났으려나, 슬슬 첫 과제들의 성적이 발표되고 중간 레포트와 마지막 시험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으로 수행한 나의 첫 과제의 점수가 발표되던 그 날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워서 멋들어지게 작성했다 자부했던 내 첫 레포트의 점수는 C. 심지어 예쁘게 각 맞춰 스테이플러를 집어둔 A4용지에는 무수히 많은 빨간 줄과 빨간 코멘 트들이 달려있었다. 참담했다. 충격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글과 대학이 요구하는 글은 전혀 다른 것이었으며, 코멘트를 아무리 읽어도 이해는커녕 공감조차 되지 않았다.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점수를 받은 후, 무작정 도서관에서 논문을 빌려 읽어보고 내 글과 대조 해보는 등 문제점을 밝히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레포트의 성적 또한 마찬가지로 C. 실수를 하거나 실망을 하면 뜯어고치고 조심하여 앞을 내다볼 수 있지만, 실패를 겪고 나면 앞이 보이지 않음을 나는 20살 첫 학기에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실패’를 모르고 살아왔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말 고민이 많았다. 한편으론 실패가 두려워 내가 이대학에 오는 게 맞는 선택이었는지, 아직 대학에서 공부할 준비가 안 된 것은 아닌지 등 현실로 부터 도피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20년을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설음이었기에 그것에서 느껴지는 혼란은 날이 갈수록 가중되었으며 내게도 소위 말하는 슬럼프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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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친구의 전화를 계기로 마음을 크게 바꾸게 되었다. 내고민을 묵묵히 듣던 그 친구는 쉽게 답변을 던지지 않았다. 마치 누구나 다 겪는 일인 양 고민의 무게를 쉽게 재지도, 더욱 힘든 경우를 들어 남의 불행 속에서 위안을 얻도록 말을 뱉지도 않았 다. 딱 한 마디.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문장에 담아내며 내게 힘을 실어 주었다.

“넌 원래 노력으로 지금까지 왔잖아. 항상 남들보다 많이 노력하며 이뤄냈고 그런 너를 우린 믿어왔고. 남들보다 지금 잘하지 못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와 놓고도 이 만성적인 불편함을 우리 뇌의 경고가 아닌 내가 이겨내고 있는 징후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Tudor, 2012)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평가. 단편적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려 했던 나에게 온전히 나 스스로와 싸워왔던 과거를 일깨워준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대학 생활을 하며 성적보다는 나 자신의 성장과 변화, 자기계발에 많이 관심을 가져왔다. 물론 남들과 시작점이 다르기에 성적은 마음에 차지 않을 수도 있었으며 습득하고 이해하는 능력 또한 강의자가 원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과 수업을 통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없었던 사회 현상들을 사회 과학적 측면에서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높은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였다.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아 보며 후회하기보단 지나온 발자취를 곱씹어 보고 그동안 고생했던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고비 넘어온 나를 칭찬 한다. 그리고 앞선 일을 걱정하기보단 또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예정된 변화에 대해 희망을 생각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프레임은 그 힘이 강해 사람의 사고를 경직되게 만든다. 부정 적인 해석으로 사고를 유도하고 긍정적인 일마저도 의심과 걱정을 통해 애써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도록 만든다. 미래의 나를 끌어와 현재의 나에게 주어진 행복을 온전히 즐길 수 없도록 만들며, 과거의 나를 회상시켜 지금의 나를 옭아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교과서 속 퍼시 왕이 핑크 안경을 쓰고 세상을 붉게 물들였듯, 관점을 바꾸고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안경알 하나를 바꿔 헬조선이 아닌 헤븐조선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람마다 희망을 담는 안경알 색상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자.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하고 굳게 잠겼던 따뜻한 수도꼭지를 열어젖히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내게 따뜻한 물이 남들에겐 뜨거운 물일 수도 있음을, 내게 시원한 물도 남들에겐 따뜻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은 통일된 기준이 아닌, 각자의 기준에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 보고 행복할 수 있는 관점에 따라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세상이다. 이곳에 한발 다가서기 위해선 세상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 아닌, 나부터 온전히 내 행복을 위하려는 자세가 절실하다.
Story Highlights - 관점의 변화와 행복으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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