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병원 김태훈
세계 최고의 의료 선진국, 신기술이나 새로운 치료의 독보적인 리더, 연구에 아낌없이 투자해주는 나라이자 우리나라의 의료 실정이나 의료비 부분의 비합리성을 얘기할 때 항상 의사들의 입장이 되어주는 미국! 저는 이미 1년 여 전부터 현재 근무하는 세종병원에서 연수를 허가 받을 수 있었고 미국으로 갈 것을 이미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최종 목적지가 정해지기까지 적지 않은 마음 고생을 겪게 된 저는, 확정이 되었을 때 설렘과 기대감이 남달랐습니다.
연수가게 된 병원은 코네티컷의 University of Connecticut, 코네티컷 주는 어디 있는 주인지 알지도 못했고, 가본적도 없는 이름만 들어봤던 아주 낯선 곳이었습니다. 뉴욕에서 가깝다는 얘기 외에는 그렇게 와 닿을 만한 정보는 얻지 못했고 이전에 연수 다녀오신 선생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영국사람들이 처음 들어와서 정착하기 시작해서 붙은 이름인 뉴 잉글랜드 지역의 대표적인 주로,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들 중 하나라는 것, 동북부 끝 쪽에 위치한 데다가 큰 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남미나 동양계 사람들이 비교적 적게 정착한 곳으로,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은 타 주에 비해 정통 코카시언들의 텃세를 느낄 수 있는 곳임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배 선생님들의 연수기로 나온 책이나 직접 들은 후기와는 다르게도 아이디를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이 무려 두 손 손가락을 모두 펼쳐야 할 정도로 많고 복잡했습니다. 아이디가 없으면 차량을 구입할 수 없다는 조건과 함께 연수 시작일이 지나야만 아이디 발급을 위한 서류를 접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곧 접할 수 있었고, 무려 1달 동안 비싼 가격의 렌터카를 얻어 타야 하는 신세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또, 연수를 결정하고 도착했을 때는 바야흐로 한진해운의 부도 사태로 국내 뉴스가 도배 되다시피 하던 시절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제가 부친 이삿짐은 한진해운의 배에 실려서 파나마 운하 근처 공해상에서 기약 없이 머물게 되었습니다. 침대 배달을 기다리는 사나흘 동안, 한국에서 비행기로 가져온 뽀로로 매트에 세 가족이 천장을 보고 누워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라며 걱정하던 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출근 전 한 달간 마음고생을 한 것과는 다르게 출근 후의 상황은 훨씬 수월 했습니다. 어렵게 연줄을 얻은 P.I. 선생님은 한국에서 이미 조교수까지 마치고 미국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신 이주용 선생님 이셨습니다. 일단 한국과 미국에서 의사 경험을 다 갖고 계시기에 눈치 빠르게 제가 불편해 할 만한 일을 먼저 얘기 해 주시고 본인이 나서서 미리 준비해 주셨으며 일일이 손을 잡고 심장내과 과장들과 인사를 시켜 주신 덕분에 쉽게 그들과 낯을 틀 수 있었습니다. 또, 연수 간 곳이 한국과 같은 심장내과, 그 중에서도 인터벤션 파트였기 때문에 특별한 적응 기간 없이 바로 연수 첫 달부터 미국 의료계와 의료선진국의 시설을 비교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널찍한 1인실로 구성된 입원실 그리고 전동 베드, 잘은 모르지만 풍부한 간호 및 의사 인력, DRG로 각각의 시술이 묶여 있지만 워낙 높은 액수로 책정되었기에 수입 문제가 별로 없다는 병원 상황을 들었습니다. 또, 임상 의사, 연구 의사, 학생 강의를 맡은 의사의 완벽한 업무 분리로 의사들이 우리나라처럼 연구, 강의, 임상의 세 필수 의무 때문에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부러웠습니다. 이주용 선생님은 Vascular intervention을 담당하고 계셨는데 꽤 많은 환자 풀을 갖고 계셨고, 우리나라와 달리 특이하게 아주 다양한 rotation artherectomy 기구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 심장내과 의사로서 한번도 경험이 없었던, varicose vein의 catheter ablation technique이라던가, pelvic compression disease의 large iliac vein intervention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 옵션, 다양한 기구를 쓸 수 있으며 1인실과 풍부한 인력의 배정 등 큰 장점만 보이던 미국은 모든 사람, 모든 환자에게 의료 천국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이의 학교 생활 및 방과 외 활동을 위한 소아과의 문진 및 진찰료가 약 20만원었고 예약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또, 와이프가 멈추지 않는 코피로 지혈을 위해 방문한 Urgent care에서 간단한 nasal packing에 약 30만원의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병원 진료의 경우도 진단 및 치료까지 시간이 한국 대비 너무 오래 걸리는 점, 감별진단을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는 점도 그랬습니다. 또, 역시 한 의사가 3~4 배의 시술이나 수술을 해야 하는 한국의 경우가 좀 더 손기술과 테크닉 적인 면에서 우월해 보이기도 했습니다(이건 방사선사 어시스트 nurse의 경우도 똑 같은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 다시 도착해서 2~3달이 지난 지금, 가기 전과 비슷하게, 아니 체감하기에 이전보다 더 바쁘게, 다시 적응하여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들고 늦은 퇴근과 회식 문화에 다시 젖어갈 즈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비록 의사의 천국은 아니지만 의료의 선진국은 사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