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보완할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제 제도적으로 첫 걸음을 뗐다는 점은 기념할 만하다. 성인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전문의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를 바탕으로 전문의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라고 판단하면 약간의 확인 절차를 거쳐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고 환자로 하여금 임종을 맞이하게 하는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과 ‘김할머니 사건’으로 제기되고 진척된 사회적 논의가 일단락된 것이다. 물론 앞으로 많은 문제가 불거지게 될 것이고, 그 때마다 논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방향은 환자 자신의 의사 또는 환자의 의사를 바탕으로 한 전문의의 계획에 따라 연명의료의 중단이나 유보가 이뤄질 것이고, 연명의료의 범위도 확대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 두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첫째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설명이다. 의료진은 물론 행정직들도 “치료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환자 보호자들이 알리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요구한다.”, “환자도 크게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라는 등의 이유로 말기 암 환자나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자에 대해 병명은 물론 예후, 대체가능한 치료법 등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114명의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100명의 가족이 직접 환자에게 임종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을 거부했으며, 내과 말기 암 환자 20명 가운데 가족과 대화를 하는 환자는 7명에 불과했다고 한다(허대석,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97면). 이는 연명의료결정법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의료계에서 직접 환자를 다루는 분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래서는 제도의 정착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모 교수는 암이라는 사실과 예후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환자가 병원에서 자살을 한 이후로 쉽게 환자에게 설명을 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이는 시설에 대한 보완을 하고 환자에 대한 경과관찰에 좀 더 기울이는 것으로 보완하고, 일단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제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전문영역인 의료 영역에서는 올바른 환자 자기결정권의 전제가 의료진의 충분한 사전설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환자만 유독 자신의 상태에 대한 관심이 적거나, 자살을 많이 시도한다거나, 가족들이 적극 개입한다고 볼 수 없다. 미국의 경우에도 절반 이상의 의료진이 암 환자에게 설명을 한다고 한다. 물론 대단히 어려운 장면이고, 일반인이라면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러나 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함으로 가운을 입는 세 직종 중 하나인 의사라면 어떻게든 마주쳐야 하는 시간이다. 환자의 동의는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표현되는 방법이고, 자기결정권의 헌법적 근거는 행복추구권이다. 즉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환자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를 위한 필수요소가 의료진의 충분한 설명이다.
다음으로 불완전한 결정을 하는 환자들을 의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고령의 STEMI 환자는 응급의료법상의 응급환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하여 응급의료가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 법정대리인이 있으면 법정대리인으로부터 동의를 받으면 되고(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는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료인 1인의 동의), 동행인이 있으면 동행인에게 설명만 하면 시술이나 수술을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대법원은 ‘포괄동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시술이나 수술에 대한 동의에 그 이후 필요한 투석이나 그 밖의 치료행위에 대해 동의를 받을 수 없다. 이 경우 응급진료 후 환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문제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연명의료결정법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연명의료를 4가지로 규정하고 환자 또는 전문의가 중단 또는 유보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앞선 사례에 대입해 보면 응급의료의 범위를 좀 더 확장하여 응급으로 시행하는 처치나 수술에 수반되는 필수적 진료행위는 응급의료에 포함시켜 환자, 법정대리인이 응급처치나 수술 후에 수반되는 필수적 진료행위에 대해 거부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행위를 어느 시점까지 인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는 하나하나 사례를 축적해 갈 수밖에 없다. 우리 응급의료법이 응급환자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보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환자에 대한 모든 진료를 포함시킬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논의가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응급상태에서는 진료에 동의하였다가 이후의 진료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아마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심혈관질환에 따른 응급환자의 모호한 경계로 인해 초기에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개인적으로 ‘무의미한 의료’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무의미한지에 대한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치료적 효과가 없을지라도 의료진이 행하는 최선의 치료행위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 모순적 결정이 가족에 대한 미안함인지, 경제적 이유인지 의료진은 알 필요도 없다. 환자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시점에 담당하는 환자를 부질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의료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것이 특히 살릴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라면……. 사족을 하나 달자면 응급의료법상으로도 사후 설명을 하고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데 실무에서 동의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냥 진료기록에 확인상 한 줄 적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