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6년7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있는 플로리다 대학의 심장혈관연구센터 (University of Florida, Cardiovascular Research Center)에서 연수를 하였습니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연수가기 전에는 연수장소 선택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연수가기 직전에 병원 생활에 지쳐 있었던 터라, 연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보다는 한국에서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목적의식이 강했기에 따뜻한 날씨와 가족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소를 고르고 싶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일년 내내 추운 날씨가 없고 바다로 둘러싸인 플로리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플로리다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어로 "land of flowers" 라는 뜻을 가진 플로리다주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내에서의 별명은 the Sunshine State 라 불리며 디즈니월드 와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있는 관광도시인 올랜도, 멋진 해변을 가진 마이애미, 낭만의 키웨스트 등 미국의 주요 관광도시들이 몰려 있습니다. 또한 한국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잭슨빌에서 가까운 곳에 오래된 도시인 세인트 오거스틴이라는 낭만이 깃든 곳도 있습니다. 추운 날씨와 갑갑한 도시생활을 피하고 싶었던 저는 북쪽도시들은 일찌감치 제외하고 캘리포니아의 샌디에고에 있는 basic research lab 과 플로리다 대학의 clinical research center 둘 을 저울질하며 고민 했었으나 역시 실험실에서 하는 basic research 보다는 병원내에서 실제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하는 플로리다 대학에 조인하기로 결정하고 잭슨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플로리다 대학의 Dominick J. Angiolillo 교수는 혈소판과 관련된 심혈관계 임상 연구에서 많은 논문들을 발표하였으며 현재도 활발한 연구활동으로 명성이 높은 분입니다. 한림대학의 조정래선생님이 이곳에서 연수를 하셨고 제가 연수준비를 할 때는 경상대학의 박용휘선생님이 이곳에서 연수 중이었기 때문에 이 분들을 통하여 쉽게 연수 허락을 받게 되었고,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많이 도와 주셔서 연수 정착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만 병원 주위가 총기사고를 포함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 병원에서 30마일 외곽의 조용한 곳에 집을 얻었습니다. 잭슨빌 시내에 있는 플로리다대학병원 부설 심혈관연구센터에서는 clinical study 가 주된 연구이며, 이 병원에서 치료받은 심혈관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Pharmacodynamic study, pharmacogenetic study 등을 시행하며, 새로운 항혈소판 약제들에 대한 연구들을 진행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대규모 연구보다는 좋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소규모 환자들로 data를 만들어내고 논문을 써서 impact factor 가 높은 저널에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가성비(?) 높은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연수생활 초반에는 이곳에서 시행하는 여러 연구 프로젝트들의 진행과정에 참여하였고 환자 selection 및 연구 permission 을 받는 과정에 참여했었으며, 이후에는 임상연구 data를 정리하고 논문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구활동 이외에도 금요일에는 cath lab에 들어가서 Coronary intervention, Peripheral intervention, TAVI 등을 참관하고 cath conference 에도 참석하여 그들의 환자 치료 계획과 치료과정들을 살펴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 앞에 연수하신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cath lab 과 research center 내의 직원 과 간호사들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제게 많은 호의를 베풀어 주고 잘 대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미국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한국환자들에 비해 훨씬 쉬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환자들의 상당수는 임상연구를 참여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별로 없었으며, 이 사람들 대부분은 작게는 자기가 다니는 대학병원의 발전, 크게는 인류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이 작은 임상연구이지만 이에 참여함으로써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연구용 혈액샘플을 얻기 위해 주사바늘에 팔을 내주는 것에 너그러웠고, 또한 몇차례의 샘플링 실수에도 (비만한 환자들의 경우 혈액채취를 할 정맥을 찾기가 어려워 혈액채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보였습니다.) 오히려 연구간호사들을 격려해 주는 모습들은 한국에서 임상연구의 어려움을 많이 보았던 나에게는 부럽기도 하고 또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갖고 있는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바뀌게 될 날들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대학병원 의사의 해외 연수과정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저는 미국 연수 과정을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당직 안하고 골프장을 매일 갈 수 있으며 매주 가족여행을 가는 것들이 좋았다기 보다는,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주위를 돌아보고 천천히 갈수 있었던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삶을 나름대로의 중간평가 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구요. 물론 가족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기억들도 갖게 된 것도 연수생활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