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아날로그 취미에 관하여

CULTURE

아날로그 취미에 관하여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윤영원

디지털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음악 감상에 있어서도 CD 마저도 외면당하고, 스트리밍이나 파일을 이용한 디지털 음원이 주가 되는 것 같습니다. 70년대 후반부터 소니와 필립스사의 공동연구로 시작된 CD (compact disc)는 드디어 1981년에 최초로 음반이 발매되면서 그 당시까지의 음반의 주축이었던 LP (long play)를 몰아내고 빠르게 음반 시장의 메이저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CD는 크기가 작고 가벼우며 잡음이 없고 반영구적이라는 획기적인 매체였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디스크가 크고 무겁고 잘 닦지 않으면 지글거리는 잡음이 있고 무엇보다 한 면의 연주가 끝나면 뒤집어주어야 하는 불편함을 갖고 있던 LP는 순식간에 찬밥신세가 되고 말았으며, 그라모폰, EMI, RCA 등 당시의 메이저 음반사들도 LP의 생산을 중단하기에 이르러 80년대 중반부터는 LP의 시대는 저무는 듯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학창시절을 보냈던 70~80년대 학번 선생님들은 모두 당시 용돈을 모아서 LP를 사고 설레는 마음으로 틀어보던 기억들이 있으실 겁니다. 필자도 음악을 좋아하던 학생으로서 당시 상당히 LP 구입에 돈과 정성을 투자했던 기억이 있지만 이후로 한참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 후 LP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직접적인 이유는 오디오와 스피커가 좋아지면서 CD라는 디지털 매체가 가진 태생적인 음질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이 후 지속되는 new retro 분위기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LP를 꺼내서 먼지가 심한지 살피고 턴테이블에 올리고 조심스레 바늘을 소릿골에 내려놓으면 음악이 시작되는, 어떻게 보면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듯한 행동들이 음악 감상에 관한 예의인 것 같으며 은근히 중독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 최근의 LP의 부활과 연관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디지털의 반대말인 아날로그 음악은 LP 뿐만 아니라 릴테이프, 카세트 테이프, FM 튜너 등도 모두 아날로그 이지만 역시 음질적인 우수성이나 음원의 다양함 등을 고려하면 아날로그 음악의 대표는 LP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LP를 듣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할까요?
당연히 LP 레코드가 있어야 하고 흔히 알고 있는 턴테이블이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턴테이블은 플래터(platter)라고 하는 동그란 판을 돌려주는 모터가 주가 되는 턴테이블과 돌아가는 LP의 소리골에서 음악을 뽑아내는 바늘과 카트리지(cartridge), 또한 이 카트리지를 증폭장치와 연결시켜주는 톤암 (tone arm) 등이 합쳐져 있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는 이러한 장치들의 선택과 세팅에 따라서 소리의 변화가 매우 크기 때문에, 구입부터 세팅까지 까다롭고 진입 장벽이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그러므로 취미성이 더 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턴테이블에서 재생되는 소리의 크기는 MM카트리지의 경우 3mV 정도로 매우 작아서 100배정도 증폭이 되어야 CD플레이어나 튜너에서 나오는 0.3V 내외의 크기가 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앰프에 연결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증폭 시켜주는 포노이퀄라이저(phono equalizer) 혹은 포노앰프라고 불리는 증폭장치가 추가로 필요하게 됩니다. 예전에 만들어진 앰프들은 주 음원 소스가 LP였기 때문에 포노앰프가 내장된 것이 많았지만, CD시대에 생산된 오디오 기기들은 이 장치가 생략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포노앰프가 내장된 앰프가 없다면 따로 구입이 필요합니다.

2. 장비의 마련에 관하여
카트리지에 따르는 음질 변화가 크기는 하기 때문에, 흔히들 아날로그를 한다고 하면 카트리지를 무엇을 사용하는지 묻곤 합니다. 그러나 필자와 친한 사이인 아날로그 매니아인 모 교수님은 아날로그를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턴테이블, 톤암, 카트리지의 역할은 각각 턴테이블은 엔진, 톤암은 미션, 카트리지는 타이어에 해당한다고 표현을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턴테이블과 톤암의 선택에 의해서 기본적인 소리의 틀이 정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턴테이블은 플래터를 돌리는 구동 방법에 따라서 아이들러(Idler)형, 벨트드라이브(belt drive), 다이렉트 드라이브(direct drive) 등으로 구분되며, 각각의 방식에 따라 장단점이 있고 소리 또한 차이와 호불호가 있습니다.(그림1) 아이들러형은 모터가 아이들러를 돌리고 이것이 플래터에 붙어서 플래터를 돌리게 됩니다. 플래터의 회전 토크가 좋기 때문에 소리가 굵고 힘찬 장점이 있으나, 모터의 진동이 플래터에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신호대잡음비 (SN비)에서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아이들러 방식의 대표 턴테이블은 Garrard 301, 401, Thorens 124, EMT 등이 있으며 가정용 보다는 소위 왕년에 명기로 불렸던 방송 장비들이 많습니다. 벨트드라이브는 아이들러 방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나온 방식으로 플래터와 모터를 벨트로 연결해서 돌리는 방식입니다. 플래터의 토크가 약하기 때문에 소리가 약간 가늘고 여린 경향이 있지만, 제작의 수월성 등으로 인하여 최근에 다시 만들어지는 턴테이블의 대부분은 이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다이렉트 드라이브는 속도제어가 매우 정밀한 모터가 직접 플레터와 연결되어 플래터를 돌리는 방식으로, 일본의 테크닉스에서 1970년대에 최초로 개발하여 가정용으로 70년대, 80년대에 가장 많이 판매가 되었던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 테크닉스 1200 시리즈, 데논, 듀얼 701, 721 등의 턴테이블이 있으며, 최근에는 생산되지 않지만 1980년대에서 90년대초까지 많이 생산되었던 턴테이블 들이 고장없이 지금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 거래가 되기 때문에, 잘 고르면 아주 좋은 가성비의 턴테이블 입문기를 장만하기 쉽습니다.


그림 1.) 턴테이블의 구동방식에 따른 분류


톤암 또한 방식이 여러가지가 있고 재질에 따라 종류가 많습니다. 침압을 주는 방식에 따라 스태틱 밸런스 (static balance), 다이나믹 밸런스 (dynamic balance) 로 나뉘며, 각각 방식에 따라 소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톤암의 재질 또한 알루미늄, 스텐레스 스틸, 카본, 보론 등 여러가지로 만들어지며 각 브랜드마다 자신의 장점을 광고합니다만, 톤암의 기본적인 역할인 카트리지 소리의 전달을 외부 진동 없이 잘 전달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이러한 잘 만들어진 톤암은 상당한 가격표를 자랑하기 때문에 예산에 맞게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카트리지는 부피가 작고 종류에 따른 소리의 차이가 상당하고 업그레이드의 소지가 많아서 좋은 카트리지의 장만과 보유는 아날로그를 하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카트리지가 하는 일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코일과 자석을 이용하여 진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의 방식에 따라 대표적으로 카트리지의 방식은 MM 방식과 MC 방식으로 나뉘게 됩니다. MM (moving magnet) 방식은 영문 그대로 카트리지 몸체에 코일이 있고 자석이 바늘의 움직임에 따라 전기를 발생시켜서 소리를 내게 됩니다. 반대로 MC (moving coil) 방식은 몸체가 자석이고 바늘과 연결된 코일의 움직임으로 소리를 만들게 됩니다. 따라서 바늘이 무거워지면 안되기 때문에 코일을 많이 감을 수 없어 MM 카트리지에 비하여 소리 출력이 훨씬 작습니다. (그림2.) 각각의 방식에 따른 소리 차이가 있는데 MM 방식은 대체로 출력전압이 크기 때문에 저음이 박력 있고 힘있는 반면에 섬세함은 MC방식에 비하여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흔히들 클래식 음악에는 MC 카트리지, 팝이나 록음악에는 MM 방식이 좋다고 말하게 되는데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수 십 내지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카트리지의 경우는 대개 MC형 입니다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출력전압이 0.15~0.4mV 내외로 MM 카트리지 보다도 10~20배 더 낮기 때문에 추가적인 증폭이 또 필요하게 됩니다. 최근에 나오는 웬만한 포노앰프는 MC카트리지 사용에 대비하여 MC단을 구비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승압 트랜스(SUT: step up transformer)나 헤드앰프(pre-pre amp)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그림 2.) 카트리지의 방식에 따른 MM, MC의 차이점


마지막으로 포노앰프의 마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포노앰프는 아주 미세한 신호를 증폭하기 때문에 증폭율이 좋아야 하고 잡음이 적어야 합니다. 신호대잡음비 (SN비)가 높을수록 좋습니다. MM 포노를 기준으로 75dB 이상은 되는 것이 좋겠습니다. 포노앰프 또한 수많은 브랜드에서 만들고 있으며 가격 또한 10만원대부터 수 백만원대 이상까지 천차만별로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진공관 방식과 트랜지스터 방식으로 크게 나뉘지만 입문기로는 중고 구입시 트러블이 적고 가격이 높지 않은 트랜지스터 방식이 선호되는 것 같습니다.

3. 텐테이블의 기본 세팅에 관하여
세팅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카트리지에 연결된 바늘이 적당한 압력으로 가로, 세로 정확한 각도로 LP 레코드의 소리골과 접촉하게 해주는 것이 세팅의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버행 맞추기
오버행이란 쉽게 말하면 음반의 시작인 바깥쪽부터 안쪽까지 일정하게 바늘의 각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며, 톤암 마다 약간씩 다르게 정해져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맞추기 어렵고 오버행 게이지가 있어야 하지만, 대개 턴테이블과 톤암 구입시 한 번 세팅을 완료하면 톤암을 교체하기 전에는 다시 세팅할 필요는 거의 없으므로 입문 시에는 구입시 잘 세팅을 해놓으면 편합니다.


카트리지에 걸리는 무게가 침압 입니다. 적절한 무게로 눌러줘야 카트리지가 소리골을 추적하게 되고 카트리지마다 요구하는 적정 침압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침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침압이 너무 무거우면 카트리지의 손상이 빨리 오게 되고, 너무 가벼우면 소리골 추적능력이 떨어져서 소리가 경질이 되면서 튀게 됩니다. 대체로 경침압 카트리지의 경우에는 1.5g에서 2.5g 사이가 보통입니다. 톤암 뒤에 달려있는 무게추를 앞뒤로 이동하여 맞추게 되는데 톤암에 침압이 표시되는 톤암도 있지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디지털 침압계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그림 3.) 침압 조정

VTA, Azimuth 맞추기
VTA(vertical tracking angle) 란 톤암과 카트리지가 레코드와 이루는 평행 각도를 말하며 (그림4) 아지무스란 앞에서 보았을 때 카트리지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한가운데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림5)


그림 4.) VTA 모식도

그림 5.) 아지무스 모식도


이것이 잘 맞지 않는다면 바늘을 확대해보았을 때 그림6) 과 같이 바늘이 소리골에 비틀리게 접촉되게 됩니다. VTA 와 아지무스는 조금 익숙해지면 육안으로 충분히 조절이 가능하지만 처음에는 눈금이 매겨져 있는 자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그림 6.) 아지무스가 정확히 맞지 않은 경우와 잘 맞은 경우의 바늘 확대 조감도


마지막으로 안티스케이팅 (anti-skating) 을 맞추어 주면 기본 세팅이 끝납니다. 스케이팅이란 기본적으로 안쪽으로 휘어진 톤암의 구조상 카트리지가 턴테이블의 축 쪽으로 가려고 하는 성질이 생기게 되는데, 안티스케이팅이란 이를 상쇄하기 위한 힘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안티스케이팅은 크게 음질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맞지 않은 상태로 오랜 기간 동안 카트리지를 사용하면 캔틸레버가 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 가급적 잘 맞추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안티스케이팅 노브가 톤암에 달려있는 경우에 조절은 비교적 쉬운데 침압의 70% 정도의 무게로 노브를 돌려주면 끝납니다. 톤암에 따라서는 안티스케이팅 장치가 달려있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그냥 들으면 됩니다.

4. 음반 재생과 관리
이제 기본 세팅도 다 끝났으니 즐겁게 음반을 재생하면 됩니다. 아날로그 음반은 소리골이 마모되면 소리가 나빠지기 때문에 수명이 있습니다. 소리골에 먼지가 많이 낀 상태로 계속 재생을 하면 소리골의 마모도 빨라지므로 먼지의 적절한 세척이 소중한 음반을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LP 레코드의 재생 전과 후에 먼지를 닦아주는 것이 좋은데, 약품 등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반쯤 젖은 극세사 헝겁 (damped cloth)으로 닦아주면 편리합니다. 먼지가 많이 낀 음반의 세척은 전용 세정제와 솔 등의 키트를 이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중성세제와 물로 할 수도 있습니다. 먼지가 많이 낀 중고 음반들 중에서도 잘 세척하면 아주 음질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어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캔틸레버 끝의 다이아몬드 바늘도 이따금 자세히 들여다보고 먼지가 많이 붙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전용솔 등으로 먼지를 털어 주어야 소리도 좋아지고 바늘의 수명을 늘릴 수 있습니다. 음반이 바늘과 마찰되며 소리가 재생될 때 순간적으로 바늘 끝에서 발생하는 마찰열이 700도나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각종 오염물질이 고열에 눌어붙기도 하기 때문에 가끔은 전용 세정제 등으로 닦아주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CD나 음원의 재생에 비하여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이런저런 신경 써야 할 것도 확실히 많기는 하지만 잘 재생되는 LP판에서 나오는 음은 음질적인 면에서 CD나 디지털 음원을 훨씬 능가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라이브감 이라고 표현되는 생동감 있는 재생음을 듣다 보면, CD에는 손이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돌아가는 음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낭만의 아우라(aura)도 아주 중독성이 있습니다. 두서 없이 아날로그 취미에 관하여 소개를 하였지만, 실제 입문에는 많이 부족할 것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거나 입문을 고려하신다면 부담없이 제게 연락 주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