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여행이란? 새로움을 찾는 것이다.

CULTURE

여행이란? 새로움을 찾는 것이다.



한림의대 성심병원 조상호

2018년 5월 22일 정리

최근 해외학회 (EAS, 유럽지질동맥경화학회, 2018년 5월5일-8일) 참석차 리스본에 다녀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 글로 남겨 본다.

중재학회 홈페이지의 뉴스레터 책임자로서, 문화면에 실을 원고를 의뢰 드렸던 여러 분들이 모두 사양하셔서 대신 투고하게 된 글이다. 하지만, 마침 여행지에서 새롭게 느끼고 생각한 바도 있고 이를 글로 남기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구가 있었기에 시기적으로 잘 맞아 떨어졌다. 이러한 원고 투고의 사연도 여행지에서 내가 느낀 점과 교묘히 잘 맞는 부분이라 신기하다.

학회 참석으로 간 것이지 무슨 여행이냐고 호통 혹은 반문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나 “여행”의 본디 뜻이,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거주지를 떠나 다른 고장으로 가는 일을 통칭’ (출처: 위키피디아 2018) 이라고 하니, 일을 목적으로 떠난 이번 해외 학회 참석을 여행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학회 참가기가 아니므로 학술 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그 동안 여러 해외 학회와 개인적인 휴가로 국내 외 많은 지역을 여행하였다. (여기의 회원 분들은 저보다 훨씬 더 많으리라) 과거에는 여행에 대한 설렘, 기대감으로 흥분되고 준비 - 무엇을 볼지,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도 철저히 하고 출발 전날까지 들떠 있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점점 식상하게 느껴지고, 막상 출발 전날이 되면 가족과 떨어진다는 생각과 여행지에 도착하기까지의 힘든 절차가 상기되어 급작스럽게 가기 싫어지게 된다. 한 번은 빠리에 갈 일이 있었는데, 여행 전날까지 일에 바빠서 심지어는 묵게 될 호텔 이름과 위치도 모르고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그 때 현지에서 꽤 고생한 적이 있다.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그만큼 여행에 대한 열의가 사그러 들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가끔,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던 여행지에서 뜻밖의 감동을 받고, 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두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우연히 모두 유럽 동맥경화 학회였고 장소는 Glasgow(2015년)와 이번의 Lisbon(2018년)이다. 두 곳 모두 가기 직전까지도 갈까 말까 고심하던 곳이었다. 환승을 해야 하고 장시간 비행이 힘들며, 정보가 없다는 이유였다.

뜻밖의 감동이란, 그동안 보아오던 자연과는 완전히 다른 하이랜드(글래스우 인근)의 거칠고 웅대한 풍광과 매우 이국적인 신트라 라는 도시- 리스본 근교- 가 주는 독특하고 묘한 매력에서 기인했다. 이는 기존의 빠리나 런던의 대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한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비슷한 건물, 박물관, 미술관, 거리, 왕궁과는 전혀 다른, 매우 이질적인 데서 느끼는 색다름이 그 감동의 원천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새로움이 바로 내가 감동을 느끼는 대상이었다. 리스본의 이국적인 전차(그림1), 신트라의 독특한 왕궁, 글래스고우의 거친 산하, 해외 현지인의 생활상이 주는 생경한 느낌과 서귀포의 이름 모를 “오름”이나 동경 시내 뒷골목에서 새롭게 먹어본 음식들이 주는 감동의 이유는 모두 동일하다. 모두 새롭다는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람, 새로운 생각, 새로운 음악, 새로운 그림, 새로운 책이 주는 신선함 등이 모두 유사한 감동의 원천 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움의 대상이 장소인 것이 여행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상의 단조로움, 식상함, 권태로움을 벗어나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음식, 새로운 일, 새로운 취미, 새로운 시간을 만나는 것도 여행이다.
굳이 힘들게 해외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조로운 반복은 큰 성취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 혹은 한 단계 큰 발전을 위해서는 가끔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행 특히 아무런 정보와 기대도 없이 온 여행에서,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나면 더욱 감동이 커지는 이유는 정보 없음, 준비 없음이 새롭다는 느낌을 더욱 배가 시켜 주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오기 때문에 이미 예상한 바가 실제 존재하는 것을 보고 만족감을 느낄 수 도 있으나 새로움을 느끼는 측면에서는 손해가 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과의 인연, 우연히 들어선 가게나 음식점에서의 귀한 물건과 질 좋은 음식을 접할 때의 즐거움이, 뻔한 블로그와 여행안내서에서 추천한 곳에 가는 것보다 더욱 즐겁고 만족스럽고 한편 성취감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 – 역시 나는 안목이 있고, 직감이 좋아 라는 자기 만족감과 성취감이 바로 그것. 함정은 도박(?)이 실패할 때 ^^;;

이번 리스본 여행에서도 여러 우연한 성취감과 직감이 들어맞은 적이 있다. 정해 놓지 않고 발길 대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맞이한 놀라운 멋진 풍광들, 사람들 줄이 길에 늘어서 있어서 뭔가 좋을 것 같아서 우연히 탄 전차가 시내의 가장 유명한 코스로 나를 안내하고, 별 생각 없이 가게의 간판과 내부 느낌이 좋아서 그냥 들어간 식당에서 신선한 현지 음식과 와인을 맛볼 수 있었던 것 등 등.

우연한 현지인과의 인연이 있었는데 하나 소개하자면, 리스본의 큰 예수상 – 포루투갈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여 브라질인들이 리우데자네이루에 세운 거대 예수상을 모방하여, 포루투갈인들이 리스본에 1950년대에 만듦. 자신들의 식민지 것, 그것도 자신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한 석상을 본 따서 만들다니. 매우 아이러니 하다- 을 구경하고 나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내가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들여다 보며 있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한 촌로가 말을 건다. “다음 버스가 10분후에 온다. 앉아서 기다려라” 라고.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빈 종이를 꺼내더니 그림을 그리고 무엇을 설명하는데 포르투갈 말이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며, 나를 보며 한참 설명을 하는데 한참 후에야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막 보고 온 거대한 예수상이 큰 강(river, RIO TAJO, 리오 타호) 앞 언덕에 서 있는데, 그 예수상의 높이가 바로 그 앞의 강의 깊이와 같다는 뜻이었다. 내가 알아듣고 감탄을 하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을 하는데, 또 한참 이해 못하고 있다가, 결국 그분이 자기 나이가 91세 라고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매우 정정하여 혼자 버스도 타고 거동도 매우 자유스러운 분이었다. 예수상 보다 오히려 이런 현지인과의 소소한 대화 경험이 더 인상에 남는다. 말은 안 통해도 결국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한 기억이.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다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를 가서 사진을 찍고, 책에 소개된 맛집에 들어가 블로거 추천 메뉴를 먹어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정보 없이 갔다가 마음에 드는 일생 일대의 새로운 풍광과 좋은 음식을 우연히 접했을 때, 우연한 현지 사람과의 잠깐의 만남, 대화로 좋은 감정을 서로 교감할 때가 아닐까?

남들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지만 또한 큰 성공과 성취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큰 일정의 계획은 하되 소소한 것들은 본인의 직감과 운에 맡겨보는 것도 여행의 주는 큰 즐거움이 아닐까? 여행책자에 나오는 대로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불안해 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못하면 마는 것이지.

단, 운이야 우리가 어쩔 수 없지만 직관이나 느낌이라는 것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직접 경험한 것, 책으로 익힌 것이 밑바탕이 되어 체득한 것의 총합 이라 생각하기에, 연마가 가능하다. 직관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끊임 없이 할 수 밖에 없는 선택, 특히 매우 어려운 선택의 순간에 그 진가를 발휘 하고, 아무도 모르는, 답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 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많은 직간접 경험이 중요한데 직접 경험의 최고봉이 여행이다. 순발력, 직관, 여유로움,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 등 등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것이 여행이고 또한 이런 경험이 나중에 여행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해준다.

인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큰 밑그림은 반드시 그리되 소소한 것들은 유연성 있게, 자신의 직관 (그 동안의 경험으로 길러진 것이다) 과 운을 믿으면서 여유를 가지며 즐기듯,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여행일 것이다.



그림1. 리스본의 전차 (조상호 촬영. 2018년 5월)

그림1. 리스본의 전차 (조상호 촬영. 201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