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피는 물보다 ‘실제로’ 진하다.
KAIST 기계공학과 김형수
혈액(血液)은 몸 안의 세포에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고 세포의 신진대사에 의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회수하여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체액이다. 혈액은 크게 혈장,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가 붉은 색인 것은 적혈구 안의 철분이 산소와 결합하여 붉은 색을 띈다. 혈액의 구성성분은 색깔만 결정 짓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상태 및 나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미세유체기술 (Microfluidics Technology)을 이용하여 피 한두 방울로 환자의 질환을 진단하는 시대가 눈 앞에 펼쳐져 있다1. 필자는 형상이 일정하지 않아 변형이 쉽고 자유로이 흐르는 물질인 유체(流體)를 연구하는 기계공학자이다2. 특히나 복잡한 성질을 지닌 유체에 대한 연구를 한다.
지금부터 기계공학자의 눈으로 바라 본 혈액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유체역학에서 혈액은 그저 액체괴물 슬라임과 다를바가 없는 복잡한 유체이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둘은 점탄성(viscoelasticity, 粘彈性)의 성질을 가진 같은 식구다.
그림 1. 혈액과 슬라임.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은 뉴턴 유체(Newtonian Fluid)라고 한다. 아이작 뉴턴의 이름을 딴 용어이다. 뉴턴 유체는 전단응력(shear stress)과 전단변형률(shear strain rate)의 관계가 선형적인 물질을 말한다. 그 두 관계의 비례 상수가 바로 점성계수 (viscosity coefficient)이다. 여기서 점성계수는 액체의 끈적임을 대변하는 점도를 일컫는다. 점성계수가 큰 대표적인 예가 꿀이나 올리브 오일이고, 우리가 마시는 물은 점도가 매우 낮다. 반면, 혈액은 전단변형률에 따라 전단응력이 비선형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물질은 주로 중합체 용액, 케첩, 휘핑크림, 혈액, 페인트, 메니큐어 등과 같은 액체들이 있다. 이러한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을 유변학(Rheology)이라 한다. 혈액 내부의 구성 성분들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등과 물질 때문에 점성계수가 비선형으로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다. 액체괴물 슬라임을 가지고 놀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이 가만히 두면 고체처럼 있지만 열심히 주무르고 힘을 가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변형이 일어난다. 이는 슬라임 구성물질들은 다양한 중합체(Polymer)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뉴턴 유체의 극단적인 경우이다.
이와 같이 비뉴턴 유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액체에 작용하는 외력(전단응력 혹은 변형률)이 다르면 유체의 점성계수가 바뀌게 된다. 다시 말해 같은 혈액이지만 몸속 혈관 어느 곳을 흐르는 지에 따라 유체의 흐름(유동)이 달라질 수 있으며 혈관이 받는 압력이 불균일 해질 수 있다. 세상만사 그렇듯 모든 것은 균일하게 흘러야 순탄하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역류 흐름, 예를 들어 유동 박리(Flow separation)현상이 나타나면 혈관 협착이 발생하고 혈관 손상의 주요인이 되어 인간을 목숨을 앗아가기 까지 한다. 실제, 협착으로 인해 혈관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면 혈관 내벽이 받는 압력의 크기는 16배 증가하여 혈관 내벽이 받는 응력 또한 급격히 증가한다
3. 인체 내부의 혈류를 이해 및 예측하기 힘든 원인이 바로 혈액의 비뉴턴 성질 과 복잡한 혈관의 재료 및 구조적 성질 때문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혈액의 구성 성분의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혈액의 유변학적 성질 역시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의 혈액은 전단박화(Shear thinning)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단박화현상은 전단응력이나 변형률이 클수록 점성계수가 낮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림 2에서 보여주듯이 같은 모양의 분기 혈관을 다른 유체가 흐르게 되면 내부의 유동장이 현저히 달라진다. 전단박화 성질이 있는 유체의 경우 유체들이 잘 섞이면서 흘러가지만, 전단박화현상이 없는 뉴턴 유체의 경우 유동박리에 의한 유동 정체 영역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혈액에 노화 현상이 있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전단박화 현상이 사라지고 뉴턴 유체와 비슷한 거동을 한다. 같은 유량이 흐르는 T-모양 분기에서 액체의 성질이 다르면 전혀 다른 혈류 흐림이 생긴다
4, 5.
그림 2. 동일 유량이 T-분기점을 지날 때 혈액이 전단박화 유(왼쪽) 무(오른쪽)에 따른 유동장 차이4.
심지어, 그림 3과 같이 심지어 건강 상태가 환자 혈액의 마른 자국을 바꾸기도 한다. 혈액의 물성치와 내부의 구성 성분의 변화에 따라 얻어진 결과물이다. 마른 자국의 모양과 환자의 질병 상태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6.
그림 3. 환자의 건강상태에 따른 다양한 혈액 마른 자국들.
Reproduced with permission from 6. Copyright 2005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피는 물보다 실제로 진하다. 그 속엔 다양한 구성 성분들이 존재하고 그것들로 하여금 혈액이 복잡한 액체가 된다. 몸 속을 흐르고 있는 피(혈액)는 살아 있는 물질과 같다. 이들이 살고 있는 인체의 다양한 조건에 따라 성질이 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혈액이란 물질이 복잡하지만 재료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거동에 대한 연구를 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한 새로운 질병 원인을 알 수 있게 되거나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문헌
1. E. K. Sackmann, A. L. Fulton, and D. J. Beebe,
“The present and future role of microfluidics in biomedical research,” Nature 507(7491), 181 (2014).
2. Laboratory webpage: fil.kaist.ac.kr
3. https://en.wikipedia.org/wiki/Hagen%E2%80%93Poiseuille_equation
4. 김준규, 김형수, “비뉴턴유체의 성질에 따른 T-분기점에서의 유체 정체 현상에 대한 수치해석 연구,” 대한기계학회 추계학술대회 (2018).
5. D. Vigolo, S. Radl, and H.A. Stone, “Unexpected trapping of particles at a T-junc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13), 4770 (2014).
6. T. A. Yakhno, V. G. Yakhno, A. G. Sanin, O. A. Sanina, A. S. Pelyushenko, N. A. Egorova, I. G. Terentiev, S. V. Smetanina, O. V. Korochkina, and E. V. Yashukova, “The informative-capacity phenomenon of drying drops,” IEEE Engineering in Medicine and Biology Magazine 24(2), 96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