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 No.2
KSIC Newsletter
Published by Korean Society of Interventional Cardiology

APRIL 2021
Life Style: Culture & Hobby

평범한 의사의 마라톤 도전기


고영국  |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사실 나보다 마라톤 풀코스를 더 많이 완주하시고 더 좋은 기록을 가지신 선생님들도 계신데 마치 내가 대단한 운동매니아인 것처럼 글을 쓰기가 사실 부끄럽다. 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저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한 것은 나의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는 의료원 전체 교수들과 직원들이 같이 사용하는 작은 Fitness center가 있다. 납가운을 입고 시술하고 나면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풀고 샤워도 하기 위해 시술이 끝나면 바로 Fitness center로 향한다 (Covid-19 상황 전에는). 우리과 교수님들도 fitness center 의 단골들이시기 때문에 fitness center에 가면 항상 심장내과 교수님 몇 분은 만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기구는 러닝머신이다. 러닝머신 앞에는 TV가 한대씩 있는데 TV보면서 뛰면 머리 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비워지고 체력단련도 되는 이중효과가 있다. 납가운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몇 시간씩 시술을 하면 몸은 힘들지만 사실 제자리에 서서 주로 손을 이용해서 시술하기 때문에 사실 에너지 소모는 얼마 안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이전만큼 열량소모가 되지 않고 체중관리가 어려워져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한데 운동을 위해 굳이 병원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니 정말 편리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러닝머신에서 뛰게 되면 전날 회식으로 내 몸에게 가한 죄를 속죄하듯 1시간 정도 열심히 뛴다.
그러던 중 하루는 궁금증이 생겼다. 러닝머신에서 뛰면 돌아가는 벨트 위에서 폴짝폴짝 위아래로만 뛰는 느낌인데 이것이 정말 땅 위에서 뛰는 것과 같을까? 러싱머신에서 1시간씩 꾸준히 뛰곤 했는데 이 정도면 실제 땅 위에서는 얼마나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한번 하프마라톤에 도전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은 매년 춘천조선일보마라톤에 의료진을 파견해서 지원하고 있는데 나도 이전에 춘천마라톤에 지원 나가서 마라톤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 때 호반의 도시 춘천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고 대회에 참가하는 마라토너들이 너무 부러웠었다. 그래서 춘천 마라톤에 도전해보기로 하고 등록하려고 하니 당시에는 하프마라톤 종목이 없었고 10 KM종목은 이미 등록이 끝난 상태라 할 수 없이 풀코스에 등록하고 뛰다가 정 힘들면 중도에 포기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대회출전 3개월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는데 매일 러닝머신에서 뛰고 주말 한 번 한강변에서 뛰면서 점차적으로 거리를 20 Km까지 늘려나갔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되어 가족과 같이 춘천에 갔는데 시 전체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마라톤 동우회 회원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와서 춘천중심가가 버스주차장이 되어 버렸고 사방이 운동복을 입은 참가자들로 북적거렸다. 그 때 느낀 것은 ‘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가시간에 취미생활, 운동, 자기관리를 하는 구나’였다. 그 동안 내가 병원일만 하느라 너무 단순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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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운동복에 번호표를 달으니 나도 마치 올림픽 운동선수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출전하는 터라 대회기록이 없는 나는 마지막 조에서 스타트를 하게 되었다. 스타트할 때는 10월말이라 아침에는 날씨가 쌀쌀하고 안개도 끼어 있었지만 5 km 정도 뛰어 나가니 날씨가 화창해지고 기온도 조금 올라가 뛰는 데 적절했다. 이어 강변코스에 진입하자 강과 단풍의 산이 어울어진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원래는 자동차가 다니는 강변 도로인데 마라톤 대회를 위해 차량통행을 통제하여 아름다운 가을 날의 강변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10 Km 지점을 통과하고 20 Km까지는 나름 생각했던 pace대로 달릴 수 있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발 걸음이 가볍게 느껴져서 조금 overpacing을 했던 것 같다. 21 KM 반환점을 지난 후 춘천대회에서 악명높은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이 오르막구간은 약 10km 이상 길이의 코스로 다들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중도 포기자들이 속출하는 구간이다. 30 KM지점 댐을 건너면 다시 춘천시 방향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발가락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다리는 아직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발을 땅에 디딜때 마다 매우 고통 스러웠다. 35 km 지점 이후에는 거의 제대로 뛸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전 페이스정도만 유지하면 4시간 정도로 finish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40 Km 정도까지는 거의 걸어가는 수준으로 가다가 마지막 2 KM정도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결승점으로 향했다.
기록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첫 출전에서 4시간 20분정도로 완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 뿌듯했다. 경기를 마친 후 샤워를 하기 위해 시내 사우나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우나에는 마라톤 참가자들로 북새통이었고 샤워를 하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얼른 샤워를 마친 후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만나 시내 닭갈비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 식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과하고 식당들은 마라톤 동우회 단체손님들로 만석이었는데 그 틈속에서 비어 있는 한 테이블을 찾아 자리잡았다. 다들 막걸리, 맥주를 마시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옆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 어디서 왔는지 기록은 어떤지 물어보기도 하고 또 술을 건네기도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차로 서울로 돌아왔는데 단풍구경하고 귀경하는 차량들로 길이 많이 막혀서 4시간도 넘게 걸려 집에 도착했다. 그 후 매년 2017년까지 총 4회 춘천대회 풀코스 완주를 하였고 최고 기록은 결국 4시간 2분이었다. 그 후에는 일정이 맞지 않거나 부상으로 하프마라톤, 10 Km대회만 1년에 2차례 정도씩 뛰었는데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상황때문에 모든 대회참가가 올스탑이 되었다.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을의 전설 춘천대회에 또 다시 참가하는 날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