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No.1
KSIC Newsletter
Published by Korean Society of Interventional Cardiology

JANUARY 2022
People in KSIC

나의 해외연수를 추억하며
- ‘아빠’로, ’이웃’으로 살았던 시간


임상엽 |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저는 2013년 3월부터 2015년 1월말까지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병원 중 한 군데인 Sunnybrook Hospital에서 연수를 하였습니다. 캐나다 하면 비교적 한국과 친숙한 북미 지역이고 토론토나 벤쿠버 쪽에는 한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지만, 중재시술 영역에서는 미국에 비해 한국과 교류가 적은 편이어서, 처음에는 미국 쪽을 연수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었고 캐나다는 연수 후보지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장 내과를 전공하는 아내가 친척이 거기 산다는 이유로 토론토에서 연수를 해야 되겠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가족과 떨어져 사는데 외국에서도 기러기 생활을 할 수는 없기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중재 시술을 많이 하는 적당한 병원을 골라 연수 생활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2012년부터 Sunnybrook Hospital 의 Cath LAB Director인 Dr. Bradley Strauss에게 메일을 보내고 해외학회에서 두차례 만나서,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후, 2013년 2월말 추운 날씨에 토론토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현지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토론토 시내 방 두 개 짜리 아파트(월세3000불)를 구해놓고, 연수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시는 분이 쓰시던 차와 가구를 구매했지만, 도착 첫날엔 시차적응도 되지 않고, 지리를 몰라 장을 볼 수도 없어서, 라면으로 첫 식사를 했습니다. 이후 아이들 학교도 보내고 운전면허도 취득하고 저와 아내도 각자의 연수 병원에 잘 적응하였습니다.

Sunnybrook Hospital에서는 동물 실험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보스인 Dr. Strauss는 동맥경화와 CTO를 주로 연구하는 Jewish 의사였으며, 이스라엘에서 많은 Jewish 의사들이 연수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연수당사자가 스스로 연락해서 온 것은 제가 처음이라고 저에게 잘해주셨습니다. 캐나다의 중재시술 의사들은 시술이 있는 날은 오전에1~2케이스, 오후 1~2 케이스 정도 시술 하고 외래는 세션당 4-5명을 보며, 대학병원에서 교육, 연구, 진료를 담당하는 경우 월 7-8만불 정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급여가 미국 의사의 1/5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았습니다.
저는 주로 동맥경화증, 줄기세포, CTO 치료에 대해 동물실험을 하고, Dr. Strauss가 호출하면 연구실로 가서 같이 실험결과를 토론하고 논문을 작성하였습니다. 일 자체는 한국에서도 전남대에서 은사님이신 정명호, 안영근 교수님께 몇 년 전부터 배웠던 일들이라, 운 좋게도 스트레스 없이 논문을 몇 편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토에서의 생활은 일장일단이 있었습니다. 단점을 먼저 말씀 드리자면, 날씨가 대단히 좋지 않습니다. 겨울이 6개월 정도로 길었는데, 10월말이 되면 오후 4시면 밖이 캄캄해지고 밤이 길어지며, 한겨울에는 섭씨 영하 15-20도까지 떨어져, 저녁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가족과 붙어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 외국남자들이 가정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5월부터 눈이 녹고 꽃이 피기 시작하지만, 봄과 가을은 정말 짧게 지나가고 여름에는 한국처럼 습기 많고 섭씨 30-35도까지 온도가 올라갑니다.

캐나다 생활의 좋은 점을 말씀드리면, 캐나다인들은 자연환경을 정말 잘 보존하고 훼손하지 않아서, 차를 타고 5-10분만 가도 아름다운 공원이 많이 있고, 주말에 피크닉을 가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저의 경우 병원까지 도보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날마다 아침에 계절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며 걸어서 출근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항상 남보다 ‘빠르게, 더 크게, 더 위대하게..’ 만을 강조하는 삶이었다면, 캐나다에서는 한국보다 삶의 속도에 신경 쓰지 않고 주위도 둘러보며 개인적인 삶, 특히 아이 픽업 같은 문제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일 하다가도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면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픽업을 위해 퇴근할 수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물론 밀린 일은 항상 집에 가져가서 했지요) 또한 아이들이 영어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 말고는 공부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고 건강하고 즐겁게 놀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보스에게 이야기 하고 허락을 받으면 일주일 정도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덕분에 북/남미 대륙을 누비며 가족과 많은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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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왼쪽 - 퀘백여행 / 오른쪽 - 페루 마추피추

또한, 토론토는 한국인들이 많이 유학/거주하여 한국 식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단 외식비가 비싸서 직접 해 먹어야 하는 불편은 좀 있었지만, 저는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마저도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가족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새벽에 일어나 아침 노을을 보면서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하며 음악을 듣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중단하였던 악기와 음악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많은 이야기를 해본 것도 큰 수확 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재 시술을 하는 의사/대학교수” 로서 앞만 보고 살았다면, 연수기간에는 연구도 하였지만, 느리게 걸으면서, 옆도 좀 보고, 의사/대학교수로만 산 것이 아니라 “아빠” 로서, 그리고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을 수 있는 “이웃” 으로 사는 삶을 살면서, 인생에 대해서 다른 면도 보고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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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올랜도 디즈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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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토론토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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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오케스트라 생활 (제일 아랫줄 왼쪽)